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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캠프에 다녀와서

2023-08-29 (화) 이건희 사이언스 아카데미 STEM 매그닛 10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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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T라는 재단을 통해 멕시코에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처음 도착한 멕시코는 덥고, 습했다. 공항에서 나가자마자 안경에 습기가 찰 정도였다. 자동차로 반나절을 달려 유카탄 주, 사깔룸에 위치한 산 안토니오 소드질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집들과 사람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숙소는 하나의 큰 창고 같은 방에 군용침대와 해먹, 그리고 화장실이 전부였다. 우리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숙소였지만 이곳에서는 상당히 좋은 축에 속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반쯤 부서진 집에서 사람이 살고 있거나 집의 구색은 갖춰도 에어컨 같은 여기서는 기본적인 가전제품조차 없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지역에서 에어컨은 외부인에게 제공되는 하나의 호사였다.

이번 봉사활동의 목적은 지역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수업을 맡게


된 나는 사실 많이 긴장이 되었다. 혹시 준비한 자료들이 진도에 맞지 않는 건 아닌지, 수업이 재미가 없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 학교 건물에서 나는 두 선생님과 함께 학생들을 맞이했다. 오전 9시가 조금 넘어서 수업을 시작했다. 첫날은 진도를 많이 나가지 않는 대신 학생들과 친해지고 수준을 알아보기로 했다. 당연히도 교육 수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낮았다. 물론 이것이 학생들의 문제는 아니었다. 애초에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으니, 수준이 하향평준화된 거다.

그날 밤엔 많은 생각이 들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이제는 이해가 갔다. ‘위대한 개츠비’ 첫 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있다.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땐 말이다,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좋은 조건을 타고난 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도록 해라.” 책에서 읽을 때는 큰 의미 없이 넘어간 말이었지만, 현실에서 직접 이 상황을 마주하니 놀라움과 연민이 함께 찾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었다.

다행히도 학생들은 공부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는 ‘진짜’ 학생들이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 시켜서 온 사람이 없었다. 단순히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동네에서부터 온 학생들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수업에 임하는 태도도 좋았고, 배우는 속도도 빨랐다. 어렵다고 불평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이해하기 힘들더라도 끝까지 배워나가려고 했다. 수업은 첫날 진행한 테스트를 토대로 각자 수준에 맞는 그룹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했다. 세 그룹이 한 교실을 쓰다보니 복잡하긴 했지만, 선생님과 학생 모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발전이 있었던 날들이었다.

마지막 이틀은 초등학생들을 가르쳤다. 초등학생 가르치기는 조금 더 힘들었지만 흠집 하나 없는 그 순수함 덕에 힘든 것이 사라졌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 이렇게 자라줬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가난은 좋지 않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많은 것이 부족해도 행복해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오히려 물질세계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우리들이 오지에서 부족한 삶을 사는 사람들보다 더 불행해 보였다. 일주일 가까이 멕시코에서 생활하면서, 우리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것들이 어느 누구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고, 집에서는 당연하게 주어지던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물 같은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아이들이 고맙다고 인사하고, 어떤 아이는 나에게 그림 한 장을 그려주었다. 고마우면서도 어떤 면으로는 불쌍한 마음도 들었지만, 걱정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을 보니 풍요를 누리면서도 항상 걱정하는 우리가 더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인사를 하고 LA에 도착하니 모든 게 호화롭고 편안함에 적응이 되면서 멕시코에서 5일간 고생하면서 배웠던 교훈들이 덜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아이들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봉사활동에 참여하리라고, 그렇게 나 자신을 일깨우겠다고.

<이건희 사이언스 아카데미 STEM 매그닛 10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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