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 미국에 당당해져야 한다”

2023-08-21 (월) 유제원 기자
크게 작게

▶ 정세현 전 통일장관 워싱턴 강연회…“자국 중심성 회복해야”

“한국, 미국에 당당해져야 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지난 19일 성공회워싱턴교회에서 강연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20일 만에 한양을 차지했다. 궁지에 몰린 선조는 명나라에 도움을 부탁했으나 당시의 정세는 이미 명은 지고 청이 뜨는 상황이었다. 형식적인 파병에 불과했던 명은 수세에 몰리자 왜와 조선을 분할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선조는 왜군과 맞서 싸운 백성이 아닌 명나라 덕분에 나라를 구했다며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강조했다. 결국 망해가는 명만 바라보다 청의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면서 인조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을 당하게 됐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는 어떠한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지난 19일 성공회워싱턴교회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마치 ‘조폭의 세계’처럼 힘이 지배하는 국제정치에서 우리의 외교는 어디로 가야하는가”를 질문하며 “굴욕적 외교가 아닌 줏대 있는 외교, 자국 중심성 외교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은 지고 중국이 뜨고 있다”며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비판했던 헨리 키신지 전 국무장관의 말을 인용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나 막강했던 로마제국도 영원할 수 없었던 것처럼 미국도 마찬가지”라며 “미국이 하자는 대로 끌려만 가는 외교, 시키는 대로만 하지 말고 알아서 굽신거리지도 말고 좀 당당해지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 전 장관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우리와 함께 싸웠던 미국에 감사하는 것도 좋지만 언제까지 감사만 하고 있을 것이냐”며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굴종적 외교에 대한 각성과 부상하는 중국이나 일본에 대한 경계를 당부하면서 “우리는 일본을 미워만 하고 경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대동아 공영, 욱일기를 내세우는 일본은 미국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어 결국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 전 장관은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미국도 일본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나 싱크탱크의 연구도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면서 “특히 북핵에 대한 허위 정보가 많고 이는 무기판매를 늘리고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그는 최근 발간된 저서 ‘통찰’에서 “국제정치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모두가 도둑놈이 될 수밖에 없다”며 “우리도 세계경제 10위라는 위상에 걸맞는 외교적 역량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유제원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