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분 속이고 청소부로 일하며 바닥 삶의 여인들과의 우정그려

2023-08-18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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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 받는 척박한 삶 직접 경험, 사실적이고 솔직한 사회비판 작품

▶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Between Two Worlds) ★★★★ (5개 만점)

신분 속이고 청소부로 일하며 바닥 삶의 여인들과의 우정그려

마리안(가운데)과 동료 여객선 청소부들.

한 세계는 파리의 성공한 여류 작가의 세계요 다른 한 세계는 저임금에 시달리는 여객선 청소부들의 것이다. 최저임금을 받고 고된 노동을 하는 여자 청소부들의 척박한 삶을 직접 경험해 책으로 펴내기 위해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청소부로 취직한 작가와 이 작가의 정체를 모르고 그를 자기들의 동아리 속으로 받아들여 우정을 맺는 바닥 삶을 사는 여인들과의 관계를 그린 프랑스 드라마다.

실제로 자기 신원을 속이고 청소부로 일한 작가 플로랑스 오베나의 베스트셀러 ‘밤 청소부’를 원작으로 논픽션 작가인 엠마뉘엘 카레르가 감독으로 데뷔한 사실주의적 작품이다. 실제 얘기에 청소부들로 나오는 여러 명의 인물들이 다 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어서 거칠도록 사실적이요 솔직한 사회비판 작품으로 기록영화 분위기를 갖추었다.

영화는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캉의 정부가 운영하는 한 직업소개소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불같은 성격을 지닌 어린 두 아이의 홀어머니 크리스텔(엘렌 랑베르)이 매니저에게 기관의 관료적 행위로 인해 자기가 받을 돈을 제대로 못 받았다고 고함을 지르며 항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파리에 사는 성공한 여류작가 마리안(쥘리엣 비노쉬).


직업을 구하기 위해 이 곳을 찾아온 마리안은 자기를 면접하는 직원에게 최근에 남편이 자기를 버리고 떠나 일자리를 구하려고 왔다고 말한다. 이에 직원은 직장 경험이 없는 마리안에게 적당한 일자리로는 영불해협을 운항하는 여객선의 청소부 자리 밖에 없다고 알린다. 그리고 마리안은 이를 받아들인다.

마리안은 경제적 위기 상황에 처한 프랑스의 고용위기 문제와 최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생생하게 경험해 책을 쓰려고 자기 신분을 속이고 청소부로 취업한 것이다. 대부분이 여자들인 여객선 청소부들은 꼭두새벽에 출근해 총 230개의 방을 청소하는데 방 하나 청소하는데 주어진 시간이 단 4분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마리안은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서서히 여인들의 신임과 함께 우정을 맺으며 그들과 동화된다. 마리안은 서로 똘똘 뭉쳐 믿음과 정으로 동아리를 엮은 청소부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이들과 동료가 되지만 그들과의 우정이 거짓 위에서 이뤄진 것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영화는 마리안의 바닥 삶을 사는 인간의 실상을 밝히겠다는 작가로서의 의식과 함께 허위를 바탕으로 맺어진 믿음과 정의 타당성을 물으면서 윤리와 도덕성 문제를 탐구하고 있다.

마리안은 역시 청소부로 취직한 크리스텔과 애교가 있는 마릴루(레아 카르네)와 삼총사가 되어 짙은 우정을 맺고 사람 좋은 남자 청소부 세드릭(디이에 퓌팡)의 은근한 구애까지 받는다.

연기 잘 하는 비노쉬가 차분한 연기를 하면서 청소부들로 나오는 비 배우들에게 자기 연기를 양보하고 있다. 영화가 특히 감동적이요 사실감을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은 이 비 배우들의 연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들의 삶을 그대로 들어내듯이 자연스럽고 생생하니 사실적이어서 보는 사람을 그들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과 함께 좌절과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근로여성들의 우정과 인간적 면모를 발가벗겨 보여주는 좋은 영화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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