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하이웨이 101을 타고 남쪽으로 약 2시간 정도 달려가면 살리나스(Salinas)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살리나스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대표적인 문호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고향이며, ‘에덴의 동쪽’을 포함한 많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존 스타인벡은 자신이 살았던 농촌 마을인 살리나스의 계곡과 농장, 그리고 언덕에 있는 목장에 관한 이야기들을 쓰면서 자기 마을의 밭과 들, 언덕과 해안을 세계 모든 이들의 마을로 만들었다. 1700년대 말부터 살리나스 분지에 목장들이 형성되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여, 설탕 공장이 들어서고 넓은 밭에는 양상추들이 재배 되었다. 세계 제2차 대전 중에는 미국 내 일본인 3,856명을 강제 이주시키는 중에 1942년 4월부터 7월까지 살리나스 목장 터에 임시로 수용하기도 하였다.
‘에덴의 동쪽’은 살리나스를 배경으로 하면서 성경의 가인과 아벨을 모티브로 한 존 스타인백(John Steinbeck)의 대표적인 소설이다.나는 고등학교 때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한 헤르만 헤세의 장편소설 ‘데미안’을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존 스타인벡의 소설 ‘에덴의 동쪽’도 창세기 4장 16절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라는 구절에서 제목을 따 온 것이라 하여 큰 흥미를 가졌었다.
‘에덴의 동쪽’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반항아적인 연기를 한 제임스 딘(James Dean)을 스타덤에 올려 놓았다.영화 ‘에덴의 동쪽’에 보면,제임스 딘이 몬트레이(Monterey)에 있는 어머니를 몰래 보기 위해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는 장면이 있다. ‘에덴의 동쪽’외에 ‘분노의 포도’, ‘생쥐와 인간’ 등 스타인벡의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되었고, 그중에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것이 네 편이나 된다.
1962년 존 스타인벡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이 되었는데, 노벨상 위원회는 존 스타인벡이 멕시코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과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미국 내 일본인들이 강제 수용된 것을 반대하는 등, 억압당하는 자들과 곤경에 처한 사람들 편에 서고, 그의 작품을 통해서 보여준 자연과 흙, 산과 들, 해안가에 대한 그의 위대한 감성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8년 연방기금과 캘리포니아 패카드 재단의 기금으로 살리나스 구 도심의 메인 스트릿 1번지에 “내셔날 스타인벡 센터”(National Steinbeck Center)가 건립되었으며,현재 이곳은 살리나스 역사와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우연히 살리나스에 들렀다가 이곳을 방문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타인벡 생가(Steinback House)는 현재 레스토랑(Restaurant)으로 사용되고 있다.
존 스타인벡의 묘는 살리나스의 공동묘지 ‘추억의 정원’(Garden of memory)에 있다.그의 묘에는‘존 스타인벡, 1902-1968’ 이라고 쓴 작은 동판이 있는데,그곳을 가리키는 작은 팻말이 없으면 찾기 어려울 정도로 평범했다. 존 스타인벡은 뉴욕에서 사망하였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살리나스의 부모 곁에 함께 묻혔다. 그의 장례식에는 퓰리처상 수상작이기도 한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분노의 포도’에 출연했던 헨리 폰다(Henry Fonda)가 조사를 읽었다고 한다.
존 스타인벡의 일생은 1902년 살리나스에서 태어나 1968년 뉴욕에서 운명할 때까지 자유와 모험으로 가득 찬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정은 1962년 애완견 찰리와 함께 작은 캠핑카를 타고 미국 전역을 다니며 쓴 여행기(Travels with Charley)에서도 볼 수 있다. 작은 트럭으로 1만 마일 이상을 여행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진것들을 할수있다”는 자신의 말처럼 미지의 곳을 향해 나아가며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자 하였던 그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