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치적 양극화와 곰 세 마리

2023-07-27 (목)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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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직장이나 교회 심지어 가족끼리도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가 됐다.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다보니 좀처럼 합의점을 찾기 힘들고 서로 얼굴만 붉히고 감정도 상하게 돼 반목하게 된다. 정치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열을 내야하나 자조하며 결국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아예 말도 섞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아 그렇다 했지만 미국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이러한 반목과 증오의 정치가 심각해졌다.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결과에 승복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조하는 미덕은 사라지고 상대를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유치한 폭력성만 남았다. 극단으로 치닫는 공화당뿐만 아니라 다른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갈 곳 잃은 중도가 설 자리는 사라졌다.


시카고 대학(NORC)이 최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정치적 견해와 상관없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기본 가치에 대해 10명 가운데 9명이 동의하지만 상대방도 그러한 가치를 존중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쪽 모두 공정성(fairness),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compassion), 개인의 책임(personal responsibility) 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항상 나만 옳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상대방은 나와 다를 것이다’ 또는 ‘그들과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라고 생각해 서로 소통할 기회도 없이 끼리끼리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거짓 정보만 공유하다보니 소위 ‘확증편향’이 두드러져 결국 상대방에 대한 불신만 더 커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호불신이 지금의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일부에서는 지금의 상황이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최대 위기라고 지적한다. 지역 사회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이 앞장서 이러한 불신을 해소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지만 최근의 선거양상을 보면 오히려 이러한 갈등을 이용할 뿐이다. 초당적 노력,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는 후보는 당내 경선조차 통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곰 세 마리가 살고 있는 오두막을 찾아간 소녀(Goldilocks & The Three Bears)는 식탁에 차려진 죽 세 그릇을 먹었다. 처음은 너무 뜨겁고 다음은 너무 식었고 세 번째가 가장 알맞게 맛있었다. 거실에 있는 의자도 하나는 너무 크고 다른 하나는 너무 작았으며 침대도 하나는 너무 딱딱하고 다른 하나는 너무 푹신했다. 결국 이것저것 다 망쳐놓은 다음에 딱 알맞은 침대에서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지금 우리는 천진난만한 소녀가 돼 화목한 곰 세 마리 가족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덩치 큰 아빠 곰에게 맞는 의자가 있고 푹신한 침대를 좋아하는 엄마 곰이 있고 뜨거운 죽을 먹지 못하는 아기 곰도 있다. 소녀의 기준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굳이 먹어보지 않아도, 의자를 망가뜨리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중용(中庸)의 덕’을 알고 있다.

<유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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