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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민주국가 탄생, 그 뒤안길에는…

2023-07-24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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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도로 시작했다. 그런데 나쁜 결과가 나왔다. 그와 반대로 의도는 불순했다. 결과는 선하게 나왔다. 이런 역설적인 현상을 ‘메피스토 법칙’이라고 하던가.

하루하루가 비극의 연속이다. 교전 중인 양측 군인의 사상자만 40만에 이른다. 민간인 희생자도 수천에서, 수만으로 계속 늘고 있다.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빚은 참상이다.

비극 너머로 그러나 한 줄기 서광이 비친다. 푸틴의 의도와는 정반대 상황의 연속으로 전쟁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뭐랄까. 흉 가운데 길이 드러나고 있다고 할까. 이게 24일로 18개월째로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간 결산이다.


탈 나치화, 비무장을 통한 우크라이나의 중립.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 저지. 푸틴이 내세운 우크라이나 침공의 구실이다.

이와 함께 펼쳐진 러시아군의 전격작전은 그러나 재앙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들이 속출하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했다. 러시아와 1,200마일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도 사실상의 나토 동맹국이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폴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유럽 내에서 가장 친미적인 국가로 부상하면서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대 러시아 최전선의 일익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핏줄, 민족…. 이런 것에 그다지 구애 받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같은 자유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구성원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가치관에 바탕을 둔 국가정체성으로 거듭나면서 현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진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쟁의 예기치 못한 또 다른 결과다.

전쟁은 ‘그들’과 ‘우리’를 극명히 구분시키면서 ‘우리’로서의 강력한 동질성을 형성 시킨다. 전쟁을 통해 국가라는 테두리가 굳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결과를 푸틴 러시아의 침공이 가져왔다고 할까.

우크라이나는 민족 간의 증오, 인종청소, 끔찍한 유대인 박해로 얼룩져온 지역이었다. 흑해의 항구도시 오데사는 특히 유대인 학살로 악명을 떨쳤다. 박해의 대상이었던 유대인 인구는 전체의 0.5%에 불과하다. 그런데 유대계인 젤렌스키가 대통령이 돼 러시아 침공에 맞서고 있다.

푸틴이 크름반도와 돈바스지역 침공, 합병에 내세운 구실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계 주민 보호였다. 이 러시아계 주민들이 그런데 그렇다. 같은 핏줄의 러시아를 조국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우크라이나라는 자유 시민 사회에 더 충성심을 보이고 있다.


대 러시아 전쟁의 야전 사령관인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중장은 러시아의 중심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런데다가 모스크바 고급 참모학교를 졸업한 정통 러시아군 출신이다. 전선에서 용감히 싸우다 산화된 전사자들의 명단을 보면 러시아계는 인구 구성비에 비해 두 배나 많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다원주의와 다양성을 받아들이며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그 위로 뭔가 하나가 오버랩 되고 있다. 70년 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대한민국이 태어난 해는 1948년이다. 일제강점 상태에서 벗어난 지 3년 후다. 그리고 2년 후 자행된 것이 김일성의 남침, 6.25다. 6.25는 김일성의 통일전쟁이란 측면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스탈린의 공산화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세계사적 맥락으로 볼 때 내전이라기보다는 자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격돌이란 국제전 측면이 더 강한 것이다.

이 전쟁을 통해 한국인이 겪은 피해는 이루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자유 민주주의 신생국으로서 대한민국의 혼이랄까 하는 것이 형성된 것은 6.25를 통해서가 아닐까.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온 수백만의 월남 동포들이 오히려 반공의 최전선에 나서 더 용감히 싸웠다. 김일성과 동향인 백선엽장군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러니까 6.25를 통해 굳건히 형성된 것은 자유 민주주의 가치관에 기반을 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란 신인류’가 탄생했다. 그리고 이 신인류는 전쟁의 참화를 딛고 불과 70년의 세월동안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세계화를 통한 선진화를 이룩했다.

의도는 사악했다. 그러나 사태진전은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자유롭고, 안정되고, 궁극적으로 번영을 향해 나가는 민주주의 국가 우크라이나 탄생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이 대역전의 상황을 맞아 푸틴의 입지는 날로 좁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패퇴는 푸틴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고 러시아연방의 해체를 불러올 수 있다’-. 예상 밖으로 러시아군이 졸전을 거듭하자 서방의 주요 싱크 탱크들이 조심스럽게 내던진 전망이었다.

러시아의 패색이 짙어지자 그 논조들은 하나 둘 바뀌기 시작했다. ‘워싱턴과 서방의 정책결정자들은 러시아 붕괴가 가져올 거대 지정학적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식으로.

그리고 발생한 것이 지난 6월24일의 바그너그룹의 수장 프리고진의 난이다. 이를 통해 드러난 것은 작동이 제대로 안 되는 러시아제국의 모습이다. 분열상황을 맞고 있는 러시아군,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정보기구, 막장에 다다른 푸틴 권력 등의 상황이 여과 없이 노출된 것.

이후 서방 싱크 탱크들의 논조는 또 달라졌다. ‘푸틴 러시아의 레짐 체인지를 심각히 생각할 때가 됐다’는 방향으로. ‘워싱턴은 러시아의 엘리트층을 포섭해 푸틴을 축출하라’는 포린 어페어스의 최근의 주장이 바로 그 하나다.

‘전범수배 푸틴, 결국 남아공 브릭스 정상회담 안 간다’-. 한 언론 보도의 제목이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영장이 무서워 주요 정상회의에도 못가는 푸틴, 새삼 느껴지는 권력무상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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