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천년만의 폭우

2023-07-19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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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업스테이트 뉴욕을 6시간동안 강타한 강수량은 보통 여름철 내내 내릴 비가 하루만에 쏟아진 것과 같다고 한다.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특히 미 육군사관학교가 소재한 웨스트포인트에 쏟아진 강우량은 천년에 한 번 발생할 확률의 강우량이었다고 밝혔다. 락클랜드카운티나 웨스트체스터카운티, 그리고 태리타운 등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하루만에 5인치가 넘는 폭우를 경험했다.

이 사태를 보면서 혹자는 기후변화의 위기를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다. 탐욕스런 인간들이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회피하고, 대신 끊임없이 편리를 위해서는 자연을 쉽게 파괴하는 이미지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현대사회의 인간들이 너무 쉽게 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을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드는 것은 도파민이라고 한다. 사람이 지쳐도 힘을 내어 정진할 수 있는 이유는 소소한 성취에서 나오는 행복마약인 도파민 때문이다. 하기 싫은 공부나 운동은 1분도 못견디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오락기 게임이나 드라마시청은 10시간도 할 수 있게 만드는 도파민의 마력 말이다. 그런데 도파민도 마약처럼 무조건 다 좋을 수만은 없지 않을까.

쥐 실험을 보면서 느끼는 건, 쥐들이 설탕물 한 방울을 먹기 위해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게 과연 자신을 위해 좋은 것일까 라는 의문이다. 적지만 익숙한 도파민이 계속 나오는 생활을 지속하면 안정감과 편안함을 얻게 되지만, 과연 그렇게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만 인생을 살아가는 게 옳은 일일지도 의문이다.

이민사회에서 쉴새없이 일하면서 재산 불리는 재미로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과로사했다는 소식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꼭 죽지는 않더라도 큰 병을 얻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매일 얻는 도파민의 작은 쾌락을 잊지 못하고 하던 일을 반복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있다.

인생은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열심과 성실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렇다고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는 없다.
요즈음은 역설적으로 부지런한 토끼, 약은 거북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즉, 사물의 이면을 잘 보고 생각하면서 살자는 말일 것이다.

도파민의 역설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 아닐까. 도파민이 주는 즐거움과 안락함에 빠져 익숙하고 편한 길로만 가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가끔은 거역하도록 해보자는 말이다. 아니면 최소한 잘 풀리는 인생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라도 갖고 살아야 ‘천년에 한번 맞는 폭우’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부모 복이 많아 대학도 쉽게 들어가서 직장도 잘 얻는 사람이라면 부모와 선생님들에게 항상 감사의 마음을 갖고 표현하면 자신의 도파민을 숭배하는 우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사업을 하던 행운이 따르고 잘 풀리는 사람은 항상 자신에게 성공을 허락해주는 손님들과 파트너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자신이 하는 노력 덕에 나오는 성취감의 도파민만을 맹종하는 사람은 교만과 자만에 빠질 수 있다.

한인사회가 내홍을 잘 극복하고 뉴욕한인회장 선거를 잘 치렀다. 주변에도 크게 사업에 성공한 한인들을 자주 볼 수 있는 요즘이다. 그렇지만 ‘천년에 한번 오는 폭우’처럼 열심히 성실히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도 뜻하지 않은 폭우를 겪게 되는 게 인생이다. 매일 느끼는 작은 도파민의 마성에 한번쯤은 의문을 가져보면 어떨까.

문명의 이기와 과학의 발전으로 하루하루를 도파민의 홍수속에 빠져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이런 인생의 ‘폭우’가 언젠가는 쏟아질 것이다.
감사의 마음으로 홍수를 대비하면서 주변을 항상 돌아보는 현명한 한인커뮤니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폭우를 보면서 느낀 노파심이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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