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속활자 역사 바꿀 획기적 연구결과 발표
2023-07-12 (수)
정태수 기자
▶ 반도체전문 북가주 한인불자 유우식 박사
▶ 반도체 테스트기술 활용 고문서 활자인쇄기법 연구 결실
유우식 박사
한민족이 자랑하는 세계최초 기록 중 최초는 금속활자다. 고려말 우왕 때인 1377년에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이하 직지, 고려의 승려 백운화상이 부처와 역대 고승들의 말씀을 모아 1372년에 정리한 책) 상하 두 권이 그 증거다. 청주 흥덕사에서 처음 인쇄된 뒤 조선말 프랑스로 반출된 직지 상하권은 20세기 후반에야 금속활자로 인쇄된 세계최초 문헌으로 공인됐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한 직지는 굴곡진 한민족사를 대변하듯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조선말 콜랭 드 플랑시라는 프랑스 외교관이 구입해 프랑스로 가져갔고, 1950년대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됐다고 한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이 귀한 ‘메이드 인 코리아 세계유산’이 있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20년쯤 지난 1970년대 그곳에서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 박사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강탈이나 절도가 아니라 적법한 거래절차를 거친 반출이라 환수를 위한 외교노력이나 여론압박이 먹혀들 여지는 매우 제한적이지만 이 과정에서 직지는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보다 100년 이상 앞선 진정한 세계최초 타이틀을 차지하면서 한민족의 긍지를 높여주는 빼박증거로 자리잡았다. 남북한 어디서든 초중고를 다녔다면 누구든지 직지와 구텐베르크가 등장하는 세계금속활자 최초발명 관련 시험문제를 풀어봤을 것이다. 2001년 9월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을 때 남북한 거의 모든 언론매체들이 모처럼 한목소리로 이를 민족사적 경사로 집중보도했다. 당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했다는 "금속활자를 제일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도 우리민족이라는 것을 누구든지 알도록 하여야 합니다"라는 말이 전해진다.
그런데다. 직지의 세계최초 타이들이 박탈될지 모를 위기(?)에 처했다. 알고보니 위기가 아니다. 이 또한 경사다. 직지보다 앞섰다는 금속활자(본) 역시 '메이드 인 고려'인 까닭이다. 직지보다 약 140년 앞서 인쇄된 남명증도가(송나라 승려 법천의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주자본으로 중조하여 1239년에 번각한 불교서적)의 인쇄본 중 일부(공인본)가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목판본이 아니라 금속활자본이라는 주장이 반도체공학적 검증작업을 거쳐 공식 학술회의에서 제기된 것이다. 지난달 경북대에서 열린 국제아시아학술회의에서다. 공인될 경우 세계 금속활자 역사를 다시 써야 할 이 중대발표 주인공은 북가주 한인불자 유우식 박사(웨이퍼마스터즈 대표, 사진)다.
참선모임 수선회와 공부모임 학이시습회 등 북가주 불자모임에 적극 참여했던 유 박사는 반도체 테스트기술을 이용해 한국 고문서의 활자인쇄기법을 연구 검증해오다 전부 목판본으로 알려진 남명증도가의 일부에서 목판본이라면 있을 수 없는 ‘특이한 결함’을 발견해 이른바 반증논법으로 그 공인본이 금속활자본일 수밖에 없음을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꽤 오래 전부터 줄기차게 제기했으나 관련학계의 보수적 장벽 등에 막혀 번번이 학술지 게재나 학술회의 발표기회조차 잡지 못했을 뿐이다. 따라서 올해 권위있는 아시아학술회의에서 발표기회를 잡은 것만 해도 의미있는 진전이다. 또 유 박사의 예기치 않은 '진입장애'는 ‘발명에 그쳐버린 고려의 금속활자’와 ‘발명을 넘어 혁명을 불러온 독일의 금속활자’의 다른 처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아픈 지적도 있다. 즉 직지든 남명증도가든 고려의 금속활자는 한문에 익숙한 극소수 승려들과 유생들만 접근가능한 경전인쇄에 그치는 바람에 일반인들의 지식확대와 인식변화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 반면, 독일의 인쇄업자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는 곧장 라틴어를 모르는 독일인들을 위한 독일어성경과 통속소설 기행기 등 일반인들 구미에 맞는 읽을거리를 대량인쇄하는 데 쓰여져 유럽에 독서열풍을 일으키고 이는 결국 유럽인들의 새로운 각성으로 이어진 끝에 중세암흑기를 마감하고 르네상스(그리스로마 고전읽기 등 문예부흥운동)를 여는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고려의 금속활자는 발명에 그쳤고 독일의 금속활자는 혁명까지 이어졌다는 비교평가다. 게다가 서지학자 문헌학자 중심의 한국내 기존학계는 “공학도가 뭘 안다고…” 같은 배타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그렇다고 꺾일 유 박사도 아닌 듯하다. 그는 최근 BTN과의 인터뷰에서 “서지학자들이 근거로 제시했던 내용들이 제가 이해하고 있는 수준의 재료의 특징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하나씩 찾아보니 그 주장이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됐죠. 서지학자들의 주장이 실질적으로 재료학적인 특징을 고려하지 않은 느낌에 의한 판단이었다는 확증을 하게 됐습니다”라며 지속적인 도전의지를 드러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유 박사의 고행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은 상서로운 조짐도 읽혀진다. 유 박사의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가 늘어나는 것이다. 그를 이번 아시아학술회의에 공식초대한 경북대 윤재석 인문학술원장, 학술대회 금속활자분과 팀장을 맡은 박혜옥 박사(미 클레어몬트 대학원대학교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덕분에 유 박사의 연구성과가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학계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나아가 세계 금속활자 역사가 다시 쓰여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점점 커져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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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