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여기에서 다시 불제자로’ (4/4-2) / 이중표 붓나다라 대표
붓다나라 이중표 대표
불교는 붓다의 깨달음에서 시작된 종교다. 부처님이라는 칭호 자체가 깨달은 분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불교를 공부한다고 하면 붓다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은 왜 깨달으려고 했으며 무엇을 깨달았는가 묻기 위해서는 붓다는 무엇을 문제 삼았는가 이해해야 된다. 그럼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출가했느냐, 세가지 법, 즉 <태어나서 늙어 죽는 일>이다. 태어나서 늙어 죽음이란 무엇인가. 괴로움이다. 왜 괴로운가, 죽기 때문에 괴롭다. 붓다가 왜 죽음을 문제 삼았는가 이것부터 알고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처음 불교를 접했는데 생사를 해결했다고 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부처님도 해결한 분 같지가 않더라. 초파일에는 부처님 생일이라고 생일잔치하고 돌아가신 날은 열반절이라고 하고 그러면 말이 열반이지 우리 죽은 거나 부처님 죽은 거는 뭐가 다른가. 그런데 생사 문제를 해결했다니… 자기도 죽어놓고 생사문제를 해결했다니…
그렇지 않겠는가, 유가 있어서 생이 있다고 하는데 그게 쉽게 이해가 되겠는가. 세존께서 싸와디에 머무실 때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간은 태어나고 늙고 소멸하고 생기는 고난에 빠져 있는데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줄 모르고 있다. 이 문장을 잘 읽어야 된다, 노사가 즐겁다면 벗어나려 했겠는가. 여러분들은 즐거우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가. 문제라고 부르는 것은 항상 괴로움을 동반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이제 물어야 된다 과연 나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Being하고 있었을까. 태어난 내가 지금 있을까, 죽을 때 지금 내가 죽을까. 근데 태어난 놈이 지금 있다고 보는 거야, 내가 태어났다 말하고 내가 죽는다 말하잖나. 이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being인 존재로 자기를 이해하고 있는 거다. 이것이 곧 내가 태어나서 죽는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근본적 구조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다. 그러니까 이 존재가 있으니까 생겼다는 말은 어마어마한 사유 결과지 그냥 간단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being으로서 존재한다는 자체가 거짓이었구나, 허구였구나,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실제로 생이나 사는 없는 것인데 아닌 것인데 생사가 본래 없는 것인데 내가 생사라고 착각하고 있었구나, 그걸 깨달은 거다. 죽을 놈이 없는데 왜 죽는 걱정을 하고 사냐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나라고 취하고 있고 나라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대상을 놓고 그 속에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계속했던 것이다, 이게 바로 무아다. 그리고 네가 지금 이렇게 있다고 생각하는 너는 이러이러한 조건에 의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일 뿐이야, 이게 연기다. 그러면 내가 지금 나에게 나타나는 생사의 현상은 무지로부터서 벌어지고 있는 연기한 결과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도깨비한테 홀려 살았던 것이고 헛개비한테 속아 살았던 것이라고, 일체유위법은 꿈 같고 아지랑이 같다고 오온에 대해 자꾸 설한 것이다. 빗물이 떨어지면 거품이 생기는데 거품이 실재하는가, (볕좋은 봄날) 아지랭이가 올라오는데 아지랭이가 실재하는가.
하여 사성제, 12연기를 역관과 순관으로 거듭 관하여 설한 것이다. 이걸 바르게 실천해서 생사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살아가는 확고한 열반의 경지가 있다, 이게 이제 무학도라고 붓다는 직접 깨달아서 가르쳤다. 그래서 삶 속에서 생사라는 헛된 망상을 지워버리고 살아가는 삶을 찾기 위해서 불교를 공부해야 한다. 이게 붓다가 깨달은 내용이라고 본다. <출전-2.26 붓나다라 깨달음 강연회 중 이중표 대표 발제문, 요약정리-정태수 기자,(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