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생각 - 6.25, 트루만 대통령의 고마움

2023-06-09 (금) 임형빈/한미충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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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6.25 사변이 발발한 당시 상황을 회고하면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의 뜻을 되새겨 본다. 1950년 새벽 북괴군이 일제히 3.8선을 돌파 탱크와 기관포 등을 앞세워 진격해 왔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그 기세로 대전, 대구까지 물밀듯이 진격, 머지않아 부산만 함락되면 대한민국이 초토화되는 위기상황에 놓였다.

이때 미국을 중심으로 한 U.N 군이 참전함으로써 전세가 뒤바뀌고 급기야 대한민국이 존립 할 수 있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때, 미국 33, 34대 대통령을 역임한 헤리스 트루먼(Harrys Truman)이 1분도 지체하지 말고 미군을 참전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20세기의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오지 않은 고졸 출신이다. 학벌이 없고 집안 배경도 대단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었을 때 가졌던 직업도 역시 변변치 않았다. 기차역에서 검표 요원을 하기도 하고 조그만 상점을 경영하기도 했지만 그나마 잘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했다.


이런 평범한 사람이 세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자체가 대단히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트루먼은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위해 예비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젊은 시절 그는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자원해서 입대했다. 원래 트루먼은 지독한 근시 때문에 군 복무는 불가하나 미합중국 육군 신체검사에서 시력검사판을 통째로 외워서 통과한 후 포병장교가 되어 대위까지 승진한 특유의 용기가 있었던 사람이다.

1944년 부통령이 되었고, 1945년 4월 루즈벨트 대통령이 뇌출혈로 별세하자 이어 대통령이 되었다. 2차대전 막바지에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끼에 원자폭탄 투하를 지시하였다. 트루먼 대통령 재임 당시 한국전 총사령관이 맥아더 장군이었다.

트루먼과 한국전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남한 대통령 이승만 박사다.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에 건너가 U.N 본부에서 불법 침입한 공산군을 무찌르는데 U.N군 파견을 역설, 공산권 몇 개국을 제외하고는 만장일치 합의를 돌출해 냈다.

이승만 박사는 하버드대를 나오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인재다. 굉장히 곧고 또 오만한 성격이다. 다 망해가는 나라를 미국이 구해줬음에도 이승만 대통령은 절대로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특히 압록강까지 진격 남북통일을 꾀했으나 트루먼의 제지로 무산된 것에 유감도 있었으리라. 백악관 회담에서 트루먼 대통령을 향해 이런 고약한 사람이 있는가! 라면서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수모를 받으면서도 한국을 도와준 사람이 트루먼 대통령이었다.

1956년 10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영국과 미국 주요 인사들도 한국을 포기하고 U.N군 철수 공론이 일자 트루먼은 단호히 반대하고 계속 한국을 도왔다. 생각할수록 트루먼 대통령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얼마나 고마운 분인가? 얼마나 감사한 분인가? 미국의 감사를 잊지 말자. 한미동맹은 그래서 당연하다.

<임형빈/한미충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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