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영화계 그린 ‘거미집’으로 15년 만에 칸영화제 초청
▶ “감독으로 때론 광야에 홀로 선 기분…배우들 앙상블 재밌는 영화”
영화 ‘거미집’ 속 한 장면 [바른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미 오래전에 탔어야 할 상이지요. 하지만 수상을 떠나서 송강호 씨는 20년 가까이 우리 세대 최고 배우였다고 생각합니다."
'거미집'으로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진출한 김지운 감독은 지난해 '브로커'로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송강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 감독과 '거미집' 주연 배우 송강호는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 15년 만에 함께 칸의 무대를 밟았다.
김 감독은 26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송강호에 대해 "마술처럼 어떤 역할이든 장르든 친숙하고 거북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하는 마력이 있는 배우"라고 말했다.
"작년 칸영화제 기간 '거미집'을 촬영하고 있었어요. 강호 씨가 상을 받고 나서 촬영장으로 왔는데 모든 배우, 제작진이 나와서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개인적으로 '아, 이제야 증명하는구나. 얘도 참 늦네'라고 생각했어요. 하하."
두 사람의 인연은 1997년 '조용한 가족'부터 시작됐다. 이후 '반칙왕'(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밀정'(2016)까지 여러 작품을 함께했다.
김 감독은 "강호 씨가 현장에 있으면 또 한 명의 제작자나 감독이 있는 것 같다"며 "뛰어난 배우가 관록이 쌓이면 이렇게 듬직하고 믿음을 주는구나 싶다"고 했다.
극 중 송강호는 걸작을 만들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1970년대 영화감독 기열을 연기했다. 배우·제작진을 이끌고 어렵게 영화를 완성해낸 뒤 홀로 쓸쓸히 앉아 있는 그의 모습에서 김 감독이 겹쳐 보인다.
김 감독은 "(책임자로서) 무언가를 빨리 결정해야 하는데 물어볼 데가 없다. 마치 광야에 홀로 선 느낌이 들기도 한다"며 감독으로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거미집'에는 영화를 향한 김 감독의 애정이 듬뿍 담겼다.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감독을 비롯해 주·조연 배우, 단역, 제작진까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는지 보여준다.
김 감독은 "코로나19로 영화 산업이 멈추면서 다시 한번 영화의 가치에 대해 되새기게 됐다"면서 "영화가 내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영화의 어떤 점에 대해 매혹됐는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거미집'의 배경을 70년대로 설정한 것도 현재 영화 산업의 상황과 당시의 상황이 비슷한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유신정권이 영화를 정권 홍보와 반공사상의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창작자들의 의욕이 많이 꺾였잖아요. 이런 검열이 팬데믹 이후인 지금은 다른 얼굴로 영화 산업에 다가왔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이고 자본주의적인 형태로요. 산업이 위축된 후 영화계가 안전함을 추구하면서 모험적인 작품들은 진입하기 어려워진 상황입니다."
김 감독이 '거미집'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또 다른 하나는 배우들의 '앙상블'이다. 송강호가 맡은 기열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임수정, 오정세, 장영남, 정수정, 박정수 등 조연들 또한 고루 스크린에 담겼다. 기열이 만드는 극중극 '거미집'에서도 이들의 70년대식 연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김 감독은 "이 영화는 배우들이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됐다. 어제 시사회에서 보니 큰 역할부터 작은 역할까지 모두 눈에 들어왔다"며 "내가 잘한 게 있다면 배우들의 앙상블이 재밌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