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유일 한인사찰 정원사(주지 지연 스님)는 청정수행의 표본으로 일컬어지는 고암 대종사(1899~1988)의 미국포교 원력이 서린 도량이다. 일제하 독립운동가 겸 위대한 선지식 용성 선사의 제자로 조계종 종정을 지낸 고암 대종사는 내생에는 미국에서 태어나 부처님법을 전하겠다는 뜻을 자주 피력했을 정도로 미국포교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대종사는 1987년 4월 정원사 개원을 축원하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몸소 북가주까지 왔다가 공항에서 정원사로 가던 도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고암 대종사는 정원사를 일구던 제자 홍선 스님이 흔들리지 않도록 수시로 격려하며 미국포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진월 스님이 주석중인 리버모어 고성선원은 해인사의 새내기 스님 시절 은사였던 고암스님과 은사의 은사 용성스님에서 한자씩 따 지은 이름이다.)
대종사는 이듬해 원적에 들었다. 정원사는 남아 꾸준히 성장했다. 1996년, 설악산 신흥사에 주석하던 지연 스님이 새 주지로 부임하면서 정원사는 안정적 도약기를 맞는다. 지연 스님은 평소에는 신도들과 곧잘 농담을 주고받고 연합행사에서 깜짝 노래솜씨를 선보이는 등 소탈한 면모를 보이면서도 각종 법회는 전혀 흐트러짐이나 건너뜀이 없이 늘 여법하게 주재해왔다. 또 범패와 바라춤 등 정상급 공연단을 초청해 한국불교문화의 진수를 북가주 한인불자들에게 보시하곤 했다. 덩달아 정원사는 꽤 오랫동안 북가주 한인불자들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했다.
그러는 사이에 27년이 흘렀다. 스님도 신도들도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 7,80대가 주류다. 탈종교화 등 때문인지 연로한 불자들이 느는 만큼 젊은 불자들은 늘어나지 않는다. 20대 이하는 거의 없고 3,40대만 해도 아주 젊은 축에 든다. 게다가 지난 3년여동안에는 코비드19가 겹쳤다.
하지만 정원사 패밀리의 여법한 신행활동은 위축되지 않았다. 4월이 깊어가는데도 싸늘한 겨울기운이 가시지 않은 9일 오전, 일요법회 시작이 30분 넘게 남았는데도 정원사 공양간은 미리 온 신도들이 웃음 속에 안부를 나누느라 활기가 가득했다. 몇몇 신도들은 일찌감치 법당에서 절을 하거나 명상에 잠겼다.
효원스님
10시59분, 한국에 출타중인 지연 스님을 대신해 정원사 주지소임을 대행해온 효원 스님이 법당에 들어섰다. 공양간의 보살들은 어느새 법당에 자리잡고 조용히 법회시작을 기다렸다. 11시 정각, 법회 시작을 알리는 스님의 진언과 목탁소리, 곧이어 스님과 신도들은 좌정한 채 은은하고 경건한 음성으로 천수경을 봉독했다. 스님이 요령을 흔들며 몇가지 진언을 한 뒤 다같이 5분향례, 다시 지장보살 정근에 이은 참회진언, 반야심경 봉독, 1시간쯤 지나 시계는 정오를 가리키는데 화엄경 약찬게, 이어 스님은 정원사와 신도들은 물론 주변 모든 중생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한 뒤 약 15분간 설법을 했다. 간단한 안부인사에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소, 북한의 미사일 발사, 상월결사의 인도 성지순례, 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등 최신 시사를 두루 짚으면서 올 하반기에 닥칠 것으로 거론되는 미국의 경기침체가 현실화할 경우 부정적 파급효과 등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닥쳐올지 모를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처방전을 내려주듯 “우리가 고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저 일체개고 일체개고 이러지 말고 삼법인에 대해서 사성제에 대해서 스스로 찾아보고 생각해보라”고 거듭 주문했다. 설법에 이어 나무아미타불 정근 속에 제사까지 마치니 12시50분, 꼬박 1시간50분에 걸친 일요법회는 그렇게 끝나고 점심공양이 이어졌다. 한편 한국에 머물고 있는 지연 스님은 다음달 9일께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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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