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손맛 담은 도시락 ‘맛코’, 젊은 세대 사로잡은 ‘더코너스토어’ 등
▶ 창의성, 변화, 도전정신으로 한식 세계화
‘더 코너스토어’를 찾은 고객들과 함께 이정인씨(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사진을 찍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 음식과 주류를 통해 한국 문화를 널리, 그리고 깊이 알리고 있는 젊은 한인 사업가가 있다. 각기 다른 컨셉과 한국의 맛으로 주류사회를 사로잡은 요식업 비즈니스 6개를 운영 중인 이정인씨(41)가 그 주인공.
20살에 유학생으로 처음 미국에 발을 들여 디자인을 전공한 그가 식당을 인수하고, 현재는 요식업 비즈니스 5개를 운영하며 가족 사업으로 키운 데는 이정인 씨의 남다른 도전정신과 창의성,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능력이 큰 몫을 했다.
올해 2월 새로운 장소에서 재개업한 '더 코너 스토어'(The Korner Store)는 펑크 음악에 소주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힙한 곳이며, 보밥(BoBop)은 유부초밥을 기본으로 불고기, 볶음김치 등 한국의 맛을 가미하고 이와 함께 보바티를 판매한다. 특별한 점은 요청에 따라 보바티에 소주 샷을 넣을 수 있다는 것.
시내 2개 지점이 있는 맛코(Matko)는 한식의 캐주얼화를 실현한 곳으로 한국의 맛, 즉 엄마가 집에서 해주는 밥과 반찬을 컨셉으로 고객의 입맛과 기호에 따라 도시락으로 한상차림을 제공한다. 서울숲 컴퍼니는 국 중심으로 더욱 진정성 있는 한식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이다. 마지막으로 커미서리 키친으로 '화로' 식당도 운영중이다.
아이다호 주로 처음 유학 와 유타주를 거쳐 2004년 샌프란시스코에 오게 됐다는 이정인 씨는 디자인 전공자다. 그런 그가 처음 식당은 인수한 것은 2012년.
이정인 씨는 "한식당 '비빔바'(Bibimbar)에서 디자인 일을 도와주며 인연을 시작, 식당의 운영 과정을 알게 되자 너무 재밌어 자발적으로 이 일, 저 일 하게 되면서 현장에서 실무 경험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유학할 때는 돈이 많이 없었고, 아버지의 부도로 집안 사정이 많이 안 좋아져 미국에서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물심양면 지원해야 하는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때도 있었다"며 "그러나 비빔바의 전 업주의 도움으로 좋은 조건에 식당을 인수하며 새롭게 첫 출발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첫 사업 도전은 그리 쉽지 않았다. 이정인 씨는 "심지어 빗자루질 하나도 집에서 하는 것과는 다르더라"고 회상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가정을 이뤄 지혜롭게 꾸리는 동시에 식당, 문구점 등 여러 비즈니스를 운영하신 엄마의 강인한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어릴 적부터 내 사업을 꾸려 성장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고 이정인 씨는 말했다. 현재는 오빠와 부모님까지 미국에 오면서 10여 년째 함께 요식업 비즈니스를 키워가고 있다.
지난 2018년 APA 문화유산의 달을 맞아 SF시청에서 다양한 비즈니스로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며 이정인씨가 상을 받았다. 왼쪽부터 아버지 이희산씨, 어머니 안병란씨, 이정인씨, 아사 사파이 SF시의원, 오빠 이효민씨.
이정인 씨는 "첫 자식과 다름없는 '비빔바'는 한식의 캐주얼화를 이룬 시초이자 현재의 '맛코'를 가능케 한 식당"이라며 "한식이 세계화가 되려면 편의성이 중요하고, 그러려면 음식 주문부터 식사까지 모든 과정이 쉬워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표적 한식인 비빔밥의 재료를 고객들이 기호에 맞게 골라 단 20초 만에 한 그릇을 뚝딱 주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시켰고, 점심시간이 제한적인 직장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비빔바는 지난해 12월 문을 닫았고, 같은 자리에 서울숲 컴퍼니가 들어섰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고 나서는 모든 게 바뀌었다. 직장인들로 붐볐던 파이낸셜 디스트릭 등은 침체기를 맞았고, 사람들은 서로 만나거나 모이지 못해 우울감에 빠졌다. 이정인 씨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경험 중심으로 바뀌었다"며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소소한 시간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부담 없이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탄생한 가게가 2021년 9월 문을 연 '더 코너 스토어'"라고 말했다.
코너스토어는 한국어로 구멍가게 혹은 편의점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발렌시아 스트릿과 18가, 거주지 중심 백인 동네에 당당히 한국 국기를 꽂은 더 코너스토어는 들어서자마자 스낵과 음료수 등을 판매하는 편의점의 모습을 보이지만 내부로 더 들어가면 한쪽엔 떡볶이와 김말이, 파전 등의 길거리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다른 한쪽엔 소주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네온사인이 화려한 젊은 감각의 인테리어 디자인에 신나는 음악까지…. 말도 안 되는 컨셉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고 이정인 씨는 말했다.
이 씨는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는 컨셉이었기에 설레면서 처음엔 겁도 났다"며 "특히 한인 2세 친구들이 좋아해 줬다. 자기 뿌리와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번 와본 고객들이 친구와 지인들을 데려오고, 다른 주나 나라에서 누군가 방문하면 꼭 함께 다시 오는 등 형용할 수 없는 매력에 다시 찾아오는 고객들이 많았다"며 "아쉽게도 소음 문제로 1년 만에 문을 닫았지만, 올해 2월 아웃터 미션 지역의 새로운 자리에 다시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해당 자리에는 현재 '보밥'이 들어서 있다.
이정인 씨는 "한식의 세계화는 사람들의 호기심에서부터 시작한다. 호기심이 들어야 다양한 한식을 시도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재밌고 긍정적인 한식에 대해 첫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 나의 사명과 목적"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고객들과 항상 교류하고 대화하며 피드백을 듣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추구하며 한식에 있어 그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이정인 씨의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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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