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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연기법은 왜 혁명적 사고인가

2023-03-23 (목)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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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과기대 이진경 교수 BTN 강좌 안내

불교의 연기법은 왜 혁명적 사고인가
서울대 사회학박사. 서울과기대 교수. 올해로 만 예순. 공저 빼고 혼자 쓴 저서만 해도 30여권. 사회학 철학 역사 문학 과학 등 손대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다. ‘불교를 철학하다’는 책도 썼다(2016년). 그는 본명(박태호)을 놔두고 필명(이진경)으로 산다. 스물네살의 서울대 사회학과 석사과정 학생이던 1987년 필명으로 발표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의 인상이 워낙 짙은 탓이다.

쉰 앞둔 즈음, 그러니까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공산사회에 대한 로망을 버린지 20년이 다 된 즈음에 나온 한국일보 기사에서도 “혁명을 꿈꾸는 코뮨주의자”로 소개될 정도였던 이진경 교수는 왜 연기법을 혁명적 사고라고 주장하게 됐을까. 그보다 먼저 무엇이 그를 불교로 이끌었고 불교서적까지 쓰게 했을까.

지난해 BTN에서 “철학이 묻고 불교가 답하다”는 제목으로 행한 17회 연속강좌 첫회분 서두에 그는 “불교는 내게 ‘사건’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했다. 박사학위 취득 이듬해인 1999년 어느날부터 하루 108배를 꾸준히 해오기 이전까지 그와 불교의 인연은 있는 듯 없는 듯. 모친이 꾸준히 절에 다녔지만 따라간 적도 없었고 1990년대 말 우연히 읽은 성철 스님 법어집 ‘자기를 바로 봅시다’가 첫 불서였을 정도였다.


‘사건’은 그가 이끌던 지식공동체에서의 갈등이었다. 이견이 성냄과 미움으로 번졌다. 좌선 흉내를 내봤지만 가슴은 더 부글부글. 안되겠다 싶어 그는 관악산에 올랐다.

“약수터를 지나는데 노인이 누워서 막 욕을 하는 거에요. 둘러보니 저밖에 없는 거에요… 왜 그러시냐고 할려고 다가가면서 보니까 눈이 풀려있더라고…”

그 순간 그는 섬뜩하게 깨우쳤다, 누굴 욕하는 건 노인도 나도 같구나, 노인은 누워서 겉으로 나는 앉아서 속으로 한 것만 다를 뿐. 지식공동체 갈등사건은 관악산 쌍욕사건으로, 이는 다시 지금껏 계속하는 그의 하루 108배 ‘사건’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그러면서 그는 “내 생각으로 남을 재단하거나 싸우고 다투고 할 때 얼른 포기하고 내려놓는 게 좀 빨라졌고 싸울 일도 훨씬 적어졌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공안집 ‘벽암록’이 그에게 준 충격도 대단했던 것 같다.

“저 혼자 쓴 책만 30여권 됩니다. 책 한권 쓰려면 봐야될 책이 엄청납니다… 그런데 그 책은 제가 본 책 중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준하고 가장 놀라운 책이었는데 더 황당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는 겁니다.”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아함경부터 경전들을 공부하게 된 그는 “불교철학과 제가 아는 과학이 굉장히 잘 맞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과학에 없는 것들을 좀더 생각케 해주는 면들이 있다”는 알게 됐다고 한다. 특히 불변의 실체는 없고 모든 것은 연기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는 연기법은 불변의 진리를 찾는 철학의 입장에서든 불변의 법칙을 찾는 과학의 입장에서든 혁명적이라고 그는 정리했다.

“바이얼린 피아노 플루트 대금 거문고 이런 걸 악기라고 부르지요… 그중 바이얼린을 내가 켜면 여러분은 그만 하라고 난리일 겁니다. 내 어깨에 놓인 그건 악기가 아니라 고문기계지요, 카페 벽에 걸린 바이얼린은 장식품인 것이고… 연기적으로 사고한다는 건 이런 겁니다, 불변의 본성 같은 건 없다, 이게 공이다…”

생물학 등 과학분야도 저서를 낼 정도로 공부한 그답게 인간 역시 부단한 세포변화 때문에 “6개월 전 여러분과 지금의 여러분은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인물이 아니”라면서 그는 시튼동물기에 등장하는 늑대커플 이야기, 아메리카 개척 당시 벌어졌던 인디언이 사람인가 아닌가 논쟁, 흑인과 노예에 대한 담론, 16세기 작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어떤 문장과 아르헨티나의 현대작가가 돈키호테를 모티프로 쓴 소설의 한 문장이 100% 똑같음에도 180도 다르게 해석되는 맥락 등 ‘연기적 조건’에 따라 같은 것이 다르게 해석되는 다양한 사례로 연기법의 혁명성을 역설한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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