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복수는 누구의 것인가

2023-03-17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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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The Glory)2’ (극본 김은숙)가 지난 10일 오후, 9회부터 16회까지 전세계에 연속 공개되었다. 작년 12월30일 ‘더 글로리1’이 공개되고 거의 석달만이다. 주말동안 이 8회를 한꺼번에 본 사람들이 많다.

올 들어 과거의 학폭이 드러나 정계나 드라마에서 퇴출당하는 일이 빈번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 ‘더 글로리’는 학교 폭력피해자 문동은(송혜교 분)의 복수극으로 학폭 열풍 그 중심에 있다.

고등학교 시절 온 몸에 고데기로 인한 화상 자국이 생길 정도로 학폭을 당한 동은은 18년동안 오로지 복수를 위해 살아왔다. 결국 자신의 손에는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박연진(임지연 분)을 비롯 그 패거리를 응징한다.


더구나 이 드라마를 연출한 안길호 PD가 필리핀 유학시절 당시 자신의 여자친구를 놀렸다는 이유로 학폭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로 드러나면서 사과 하는 일까지 생겨났다.
세상을 살다보면 크고 작은 사건에서 분노하고 억울하고 불쾌한 일을 당할 것이다.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수모를 주고 곤경에 빠뜨린 사람이 밉고 복수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분노에서 일어난 충동적 감정으로 복수심이 생겼지만 쉽게 복수에 나서지 못한다. 복수를 하려면 가해자만큼 모질고 독해야 하며 오랫동안 준비를 해야 한다. 또 제대로 복수하려면 드라마 ‘더 글로리’ 처럼 주여정과 강현남 같은 조력자가 있어야 완벽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랜 준비과정에서 남을 미워하고 화내는 일에 스스로 지쳐 나가떨어진다. 복수심으로 인해 ‘내 인생, 왜 더 망가져야 하는 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만 잊어버리자’는 결론도 내리게 된다.

한편 또 하나의 복수극으로 드라마 ‘모범택시’ 가 있다. 주인공 김도기(이제훈 분)를 중심으로 장성철, 안고은, 최주임, 박주임 등이 택시회사를 위장한 사적 복수 대행팀을 꾸려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 해 복수를 해준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매주 급상승 중이다.
매주 홀수 회차에서는 억울한 피해 내용과 공권력이 힘을 못 쓰는 상황이 전개되고 짝수 회차에서는 짜릿한 복수가 마무리된다.

정의로운 사회는 국가가 개인의 복수를 공정하게 해준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정부가 참 많다. 부정한 방법으로 자신을 모함하고 절망에 빠뜨린 악인이 처벌 받는 경우는 드물고 풍요롭게 더 잘살기도 한다. 그래도 이 경우 개인적인 복수는 안 된다. 또한 권력·금력이 뛰어난 이들을 처벌 받게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불공정 불평등한 사회, 공권력의 한계에 주저앉은 피해자를 위해 ‘모범택시’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는 말처럼 사적 구제로 복수를 해준다. 법적으로 정당하지 않지만 돈 없고 배경 없는 이들에게는 숨통이 트이는 일이다. 이러한 복수 대행극을 보면서 과거 자신이 당했던 비슷한 경험이 있는 대중들은 공감하고 대리만족 하게 된다.

그런데, 보통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반평생을 상처 받고 트라우마가 생겼는데 뒤늦게 한마디 사과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래도 이번 복수극들로 인해 학교폭력, 가정폭력, 직장내 괴롭힘을 당한 이들이 더 이상 참지 않고 SNS를 통해 고발하거나 억압과 폭력에 대처 대응하기 바란다. 또 이런 드라마들이 화제가 되면서 잠재적 가해자들의 태도가 변하고 공격을 멈춘다면 천만다행이다.

그렇다면 피해자의 빼앗긴 존엄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심리학자 마이클 맥컬러프의 저서 <복수의 심리학>에서 ‘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진심어린 사과의 말, 책임 인정, 구체적 설명, 보상 약속 등을 하라 ’고 했다.

복수는 누구의 것인가? 무엇보다도 복수를 해야 할 경우가 생기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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