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삼년만에 설날이 일요일에 포개진 22일, 북가주 한인사찰들에서는 설날법회 겸 일요법회가 봉행됐다. 17시간 앞서가는 한국 사찰들에서도 그랬다. ‘아쉰 대로 탈코로나’ 뒤 처음 맞는 이번 설날법회 안팎 화두는 뜻밖에도 새마음 새출발 그런 게 아니었다.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였다. 순천 송광사(승보) 양산 통도사(불보)와 함께 삼보종찰을 이루는 그 해인사(법보), 팔만대장경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이를 보존하는 장경판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국보 보물 문화재만 수십여건에 이르는 곳,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과 우리시대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 등 많은 선지식들이 거쳐간 수행도량, 그곳에서 생긴 일을 둘러싼 온갖 얘기들이 오르내렸다.
북가주 등 해외에선 그나마 덜했다. 한국에선 불교매체들보다 종합매체들이 더 요란하게 다뤘다. 2018년 봄여름 SF여래사 창건주 설조 스님 주도 종단개혁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MBC 피디수첩 “큰스님께 묻습니다” 등 불교계 고발 프로그램이나 사건사고 파일들이 줄줄이 소환됐다. 종합매체들이 더 그런다는 건 십중팔구 불자들 입장에서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곧대로 옮기기 민망한 얘기다. 간추리면, 어느 군인은 한창 전쟁통에도 즉결처분 무릅쓰고 해인사를 지켰는데, 덕분에 살아난 해인사에 주석하는 일부 스님들이 속인 뺨치는 범계 행위로 본인들은 물론 승단, 나아가 해인사의 해인사다움을 먹칠하고 있다는 야유 비판 원성 개탄이다.
신라 후대(802년)에 창건된 해인사가 대여섯차례 큰불로 잿더미로 됐다 중수됐다 반복하다 한국전(1950년 6월~1953년 7월) 때 다시 쑥대밭이 될 뻔했던 사연부터 보자. 1951년 6월, 북한군 중공군 본대가 북으로 쫓겨간 뒤에도 가야산 일대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던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 우리공군 편대에 잔당의 아지트격인 해인사 폭격명령이 떨어졌다. 작전수행 실패는 전시에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작전수행 거부는 평시에도 자칫 즉결처분. 김영환 편대장(대령)은 목숨을 걸었다. 명령거부. 해인사는 참화를 면했다. 괴뢰잔당 토벌은 늦어졌다.
“해인사에는 700년을 내려온 우리 민족정신이 어린 문화재가 있습니다. 2차대전 때 프랑스가 파리를 살리기 위해 프랑스 전체를 나치에 넘겼고 미국이 문화재를 살리려고 교토(일본의 경주격인 옛수도)를 폭파하지 않은 이유를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대노하는 등 죽을 지경에 놓인 김 대령이 했다는 말이다. 세상물정 훤한 늙은 대통령은 노기를 삭혔다. 불심깊은 젊은 대령은 더 많은 전공으로 답했다. 충무무공훈장(1951년) 미국비행훈장(1952년) 을지무공훈장(1953년) 대통령수장 유엔종군기장 미국공로훈장(이상 1954년) 등 숱한 훈포상과 준장 진급(1954년)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별을 단 그해 3월 그는 전투기와 함께 추락하며 별이 됐다. 목숨을 건 그의 결단으로 참화를 면한 해인사는 이후에도 변함없이 치열한 구도자들은 물론 평범한 불자들과 일반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화재 때마다 이렇다할 피해를 입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장경판전과 그 안의 팔만대장경은 1995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 됐다. 2002년, 해인사 경내에는 김영환 장군(사진, 배경은 팔만대장경) 공덕비가 세워졌다.
그런데 스님들이, 더구나 누구보다 모범이 돼야 할 총무원 교육원장 출신 주지(현응)가 갖가지 범계의혹에 휩싸여 중도사퇴(산문출송)하고 그 후속처리 과정에서 또다른 말썽이 빚어지는 등 해인사에서 생긴 일이 맞나 싶고 종단직위로나 법계수위로나 범접하기 힘든 스님들이 연관된 일이 맞나 싶은 일들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
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