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만재 교수, 중가주지역 교회 ‘뿌리찾기’논문 발표
▶ 다뉴바 중심 초기한인 교회 설립 과정, 애국 활동 소개
1912년 설립되어 애국활동의 중심이었던 다뉴바 한인장로교회당. <사진 차만재 교수 제공>
1920년 3.1 독립운동 1주년을 맞아 펼쳐진 다뉴바 시가 퍼레이드
초기 이민자에 의해 다뉴바와 리들리등 중가주 지역에 설립된 한인 교회는 ‘조국 독립운동을 위한 근거지 역할을 했다”는 내용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프레즈노 정치학과의 차만재 명예교수는 최근 “프레즈노 한인장로교회 뿌리찾기’ 제목의 논문에서 초기 한인 이민교회의 역할에 대해 이와같이 밝혔다. 차만재 교수는 “20세기초 우리 이민 선조들은 유색인종에 대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천대 수준의 차별속에 나라가 없는 무국적자들이었다”면서 “교회는 이런 혹독한 외부 멸시로부터 차단된 안전한 보금자리이자 방패막이었다”고 기술 하고있다. 특히 차 교수는 교회는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야 겠다는 공동체적 가치관으로 하나님을 섬길 뿐 아니라 독립운동의 근거지 역할을 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2002년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를 설립(초대 회장)하여 이민역사 보존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그는 1912년에 설립된 다뉴바 한인장로교회를 줌심으로 델라노 한인감리교회(1936년 설립), 리들리 한인장로교회(1938년 설립) 등 초기 3개 교회의 설립과 활동분석을 통해 이와같이 제시했다. 이중 다뉴바한인장로교회는 1919년 3월1 일 독립운동 소식이 다뉴바 지역 한인들 의 애국 애족 활동을 촉발시키는 견인차 역활을 한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래서 이 논문은 다뉴바한인 장로 교회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된 애국 활동 내용을 자세히 실고있다. 이에의하면 다뉴바 교회 여성 교인들은 일본 간장 불매운동을 펼쳤는데 이 운동은 한인들이 사는 미주 전체로 퍼졌다. 1919년 5월 18일에는 다뉴바에서 한인여성 애국단이 결 성 되고 독립운동 피해자 동포들을 돕는 간호복 차림의 한국 여성 조국 구제 단 다뉴바 지회도 설립됐다. 1919년 8월 14 일부터16일에는 젊은이들의 독립운동 역활을 논의하는 ‘전국 한 인 유학생회 의가 다뉴바교회에서 열려 와싱톤 연방의회에 상해임시정부를 인정 해 줄것을 청원하기도 했다.
이와같은 애국 활동은 1919년 한해동안 일어난 일이다. 이듬해인 1920년 3.1.절 1주년 기념일에는 다뉴바교회당에 300여명이 운집하여 기념행사를 가진후 대형 태극기를 앞세워 다뉴바 시가 퍼레이드를 펼쳤다. 이외에도 다뉴바 에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창립한 도산 안창호가 1917년 8월 흥사단 소개겸 시국 강연을 한것으로 발표하고 있다. 그리고 1920년 12월에는 한국사회노동개진당 창당 대회가 다뉴바교회에서 열려 이살음 담임 목사가 당 수령으로 선출되고 다음해 당대변지 ‘동무’ 창간호를 내기도 했다. 1909년 여름에는 300여명의 한인들이 거주한것으로 되어있다.
델라노한인감리교회는 매년 3.1절 기념식을 갖는등 한시대(1888-1981)를 중심으로 한인들이 애국활동을 펼쳤다.
리들리 한인장로교회의 경우 김호, 김형순, 데이지김, 김원용, 김용중, 윤병구, 박기벽 등 8명이
리들리를 대 표하여 지역사회와 조국 독립을 위해 애국 및 사회 활동을 펼친것으로 되어있다. 또 중가주지역은 애국활동과 아울러 73명의 한인 들이 상해임시정부설립 지원금으로 9,340 달라 (오늘날 13만8천여달러) 를 모금하여 보내는등 선조들의 나라 사랑 정신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도 1912년부터 1973년까지 다룬 이 논문에는 프레즈노 한인장로교회에서 50여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고있는 차만재 교수가 본 교회 사명의 재조명, 교회내 소통, 자기 성찰등을 결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오는 4월 교회 창립50주년을 맞는 후레스노 한인장로교회(담임 강제철 목사)의 역사편찬위원회 요청에 따라 작성된 이 논문은 동 교회 홈페이지의 e-Book을 통해 앞으로 일반에게도 공개할 예정이다.
<
손수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