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서 지키는 교회의 첫 번째 절기는 1월 6일 주현절이다. 주현절은 “주님이 나타나신 날”이라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이다. 예수님은 30세가 되셨을 때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다(눅 3장 참고).
교회사적으로 보면 성탄절보다 주현절이 훨씬 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주현절은 예수님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는 절기로 지켰는데, 탄생과 세례를 동시에 기념하는 것은 세례를 출생일에 한다는 관습에 근거한 것이다. 지금도 동방정교회에서는 성탄절을 따로 지키지 않는다.
동방교회에서는 주현절을 예수님의 탄생과 세례와 관련하여 이해한 반면에, 서방교회에서는 4세기부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12월 25일)을 지키면서 주현절을 동방박사들의 베들레헴 방문과 관련시켰다. 어쨌든 예수님의 공생애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시작된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물세례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다. 그런데 왜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을까?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이유가 우리에게 세례의 모범을 보여주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인 세례 요한의 세례를 예수님께서 굳이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 요한의 세례는 우리 인간들이 죄사함을 얻기 위해 받는 세례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우리는 ‘세례’ 하면 흔히 물을 먼저 생각한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셨다(마 3:16), 이때 예수님께서 물에 완전히 들어가셨다가 나오셨기 때문에 ‘침례’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오늘날 교회에서 머리에 물을 적시며 베푸는 세례와 구별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에 완전히 들어갔다 나오느냐, 머리에 물을 적시는 것이냐 하는 것이 세례의 핵심은 아니다. 세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물보다 안수다. 구약시대부터 안수를 통해 성별함을 얻고 안수를 통해 축복이 임하였다. 안수는 맨손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기름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의 올바른 뜻을 이해하려면 구약의 안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구약시대에 성전에서 양과 같은 희생 제물을 드릴 때 제물을 가져 온 사람이 먼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한다(레 1:4). 이것은 희생 제물에 자신의 죄를 전가하는 것이다. 흠 없는 양이 인간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번 제물로 희생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례 받기 위해 오실 때 세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고 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양”은 대속죄일에 백성들의 죄를 뒤집어쓰고 광야로 나가는 아사셀 염소를 가리킨다(레 16:6-10). 구약성경에서 양과 염소는 같은 제물의 효력을 갖고 있다. 이스라엘 온 백성들의 죄를 짊어진 어린 양은 광야에 나가 죽을 때까지 걸어간다. 이 양은 흠이 없는 양이어야 한다. 대제사장은 안수를 통해 사람들의 죄를 양에게 전가시킨다. 죄 없는 양이 사람의 죄를 뒤집어쓰고 광야에서 죽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처형을 당하기 전 빌라도 총독에 의해 죄가 없다 (눅 23:4)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흠 없는 어린 양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하신 것이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는 제사장이었다. 제사장 집안의 사람으로 죄에 대해 가장 민감하였던 세례 요한의 세례는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 인간의 모든 죄를 부과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때부터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광야와 같은 세상 길을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걸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심으로 온 인류를 향한 구원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2023년 새해를 맞이하여 세상 죄악과 염려의 짐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새롭게 됨으로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면서 이웃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믿음의 삶을 사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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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대 목사(에벤에셀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