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등(無盡燈)] 왜 사냐건
2022-10-27 (목)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영화사 앞으론 하이웨이 16이 지나간다. 그 하이웨이 위엔 날마다 같은 차들이, 혹은 처음보는 차들이 쉬임 없이 오고 간다. 주로 매일아침 출근을 하고 매일 저녁 돌아가는 차들이다. 그 시간 주로 물을 주기 위해 뜰에 서 있게 되는 이 중은 그 늘어선 행렬을 볼때마다 궁금해 진다. 누가 아침마다 저 들을 저 도로 위에 서 있게 하는 걸까? 아침엔 번번히 차가 막혀 정체되어 있고, 차들 마다엔 무표정한 사람이 멍한 얼굴로 앉아있다. 다 귀찮다는 표정이고 피곤하고 우울해 보인다. 누군 더러 전화흘 하고 누군 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아무도 나무 아래 서 있는 이 중과 시선을 마주치는 이는 없다. 오래 살다보니 눈에 익은 차도 있고, 멀리서도 그 안의 사람이 누군지 알 것도 같다. 그리고 차량들 속에 있는 그들의 심정도 알것만 같아서 혼자 웃게 된다. 기쁜 웃음이 아니라 좀 서글픈 웃음이다. 그들 중엔 마냥 좋아서 거기 앉아 있는 이도 없을 것이고, 왜 이 시간에 그 행렬 속에 있어야만 하는지 의문을 갖는 이도 없을 것이다. 그저 언제부터인가 그래야만 한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날마다 그들은 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마치 티비를 보듯, 그들을 보고 있다보면 늘 같은 감정이 올라오는데, 고단한 삶의 반복을 견뎌내는 그들에 대한 짠함 같은 것이다. 우리네 삶은 그 누구에게나 고달프다, 고달프지만 반복해야 하고 벗어날 수 없다. 살아야 하므로, 삶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 끼어, 그 바퀴가 향하는 대로, 저항도 없이 굴러가야 한다. 그 회전 속에서 벗어나야 한단 생각도 없고, 벗어나면 큰일이 나는 듯이, 함께 구른다. 그들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최근 어떤 사람으로부터 왜 살아야하는지 의미를 모르겠단 얘길 들었다. 고생고생 살았는데, 저기 가면 뭔가 있을 줄 알고 달려왔는데, 도달하고 보니, 아무 의미도 없어서 허무하다고 한다. 원하는 걸 다 가졌지만 공허하다고, 무얼 하고 살아야 할지 갑자기 살 의미가 없어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종종 착각하는 게 있다. 아무도, 그 누구도, 삶은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적 없다. 애초에 삶은 의미 같은 거 없다. 삶을 의미있게 살고 싶다고 하지만, 정작 '의미'란 단어 그 자체의 개념정리를 할 수 있는 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본인이 정한 그 의미가 무엇이건 간에, 그것은 이미 삶의 의미와는 많이 벗어난 것일 확률이 높다. 삶은 동사 살다, 의 살,에 미음이 붙어 삶,이란 명사로 표기 된 것으로, 살아있는 것,을 뜻한다. 사람의 삶이어서 인생이고, 한번 뿐이어서 일생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삶의 의미, 즉, 살아있는 것,의 의미를 물어본다면, 뭐 어쩌라는 것이냐,가 답이다. '살아있는 것'의 다른 의미는 없다. 그냥 살아있는 것, 그 자체일 뿐이다. 고로, 살게 되어있고 살아야 하고, 사는 게 다다. 그리고 인생이 다 하는 순간, 삶도 끝난다. 어차피 살아있는데, 왜 사냐 묻는건 그야말로 의미 없다. 울면서 우는 게 뭐냐고 묻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어차피 살 것이라면, 살아야 하고 사는 거 밖엔 못한다면, 그저 오늘 할일 있으면 하면 된다. 그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살,아,만 있는 것, 그것은 저 병든 노인의 삶처럼 많이 지루한 것이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기 위하여, 살되, 어떻게, 가 중요하다. 어차피 걸어야 한다면 이왕이면 최선을 다해서 바르게, 어차피 먹어야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맛있게, 최선을 다해서 바르게...어,떻,게, 는 삶을 아름답게 사는 법이다. 불가에선 그것을 8정도라고 한다.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8가지의 바른 행이다. 바른이란, 처처에서 정 중앙을 알아서, 시비 없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는 의미는 정해진 것이 아니고, 본인이 행하는 그 모든 것, 업의 종합체이기 때문에, 그 '사는 일' 을 바로 인식하고 알지 않으면, 삶이 공허해지기 쉽다. 시작에도 끝에도 무엇이 있는 게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 김상용은 그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 일찌기 쓴 바 있다. '왜 사냐건 웃지요' 왜 사냐고, 답없는 물음을 해봤자 그야말로 의미없다. 그 시간에 차라리, 시 한 줄 읽고 차 한 잔 마시는 가을이기를 바란다.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