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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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매화나무

2022-10-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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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참고 견디고 인내하라는 교훈을 주며 포근히 감싸주던 매화나무가 어느 겨울부터 띄엄띄엄 꽃망울이 맺히고 어디가 아픈 듯 싶었다. 따스한 봄날이 찾아왔는데도 잎사귀가 듬성듬성 돋아나고 겉보기에도 아픈 기색이 역력했다. 화원에서 어린 매화나무를 처음 옮겨심은 몇 년 동안은 하늘에 닿을 듯 에너지 넘치게 쑥쑥 키를 키우며 씩씩하게 잘 자랐다. 그리고 나무 가지가 휘어지도록 탐스럽게 주렁주렁 매달려 그동안 수확의 기쁨도 많이 주었다. 매실이 익어갈 무렵 세상에 하나뿐인 은은하고 그윽한 향기와 유리알 같은 선명한 신맛을 주었다. 겨울에 불현듯 피어난 매화는 지친 삶에 반가움을 전해준 희망의 전령사였으며, 보고 또 보아도 눈부시게 아름다워 저절로 미소 짓게 되는 그런 꽃이었다.

그런 매화나무가 그 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 엄동설한 겨울이 다시 찾아왔지만 꽃망울 틔울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어루만져 봤더니 아무 기척없이 말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3년 전 매화나무는 있는 기력을 다해 열매를 우리에게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엄동설한에도 꽃망울을 틔우고 얼음을 머금고 꽃을 활짝 피우는 강인함에 감탄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강인함은 생명력을 잃은 후에도 지속됐다. 3년 이상 썩지도 않고 단단함을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자리에서 하늘을 보며 지금껏 꼿꼿이 서 있다가 이제서야 뿌리가 힘을 잃어 약간씩 기울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단단한 매화나무 잔가지는 가지치기를 해서 버리고 원기둥은 이제 쓸모있는 받침대로 변해 다른 과일나무에 열매가 너무 많이 달려 나무 가지가 휘어지고 부러지지 않게 하는 받침대로 남아 있다.

매화가 강인함과 절개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을 내어줄 줄은 몰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화를 그리며 정신을 수양했던 것도 이해가 됐다. 나도 매화나무를 통해 배움의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보잘 것 없고 작지만 누구를 위해 받침대로 향기로 남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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