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동해 목시조사에서 흑범고래 수백여 마리가 한꺼번에 발견됐다.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1970년대 장생포 고래잡이 부두 모습. 포경선이 배 옆에 고래를 낀 채 귀항하면 마을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곤 했다. [울산시 남구 제공]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용두사미격 드라마였다. 회가 거듭될수록 핵심 설정인 우영우 변호사의 자폐가 그저 등장인물을 귀엽게 포장하기 위한 수단인 듯 보였다. 그나마 박은빈의 인생 연기와 함께 고래의 안녕과 복지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 오랜 기간의 남획으로 많은 고래의 존립 자체가 아직도 위협을 받고 있다. 20세기 전반부에만 무려 140만 마리의 고래가 포획되었다고 하니 위협을 받지 않는다면 그게 더 신기할 노릇이다. 포경이 금지된 지도 60년이 넘었지만 개체 수는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한때 23만9,000마리에 이르렀던 흰긴수염고래는 현재 4,500마리 수준이다. 그 밖에도 참고래, 보리고래 등이 여전히 멸종 위기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근대까지의 포경은 연료인 고래기름을 위한 것이었으니 어쩌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서 볼 수 있듯 선상에서 고래의 피하지방을 녹여내 나오는 기름을 모으고 고기는 버리곤 했다.
고래고기는 누린내가 심하고 질겨 포경선 선원들에게도 최후의 비상식량이었다고 한다. 고래고기의 이런 특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고래 수요의 대부분은 식용이다. 소, 돼지, 양, 닭 같은 일반적이고 좀 더 대중적인 육류조차 환경에 미치는 영향 탓에 소비를 줄여야 하는 마당에 식용 고래라니. 시대착오적 발상 같지만 수요가 아직도 남아 있다.
육류 소비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언급했는데, 사실 고래는 지구 환경에 엄청나게 공헌하는 동물이다.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에 의하면 고래 한 마리를 보호하는 게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보다 이산화탄소 감축에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고래 한 마리당 평생 33톤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데, 나무 한 그루의 연간 최대 포집량이 22킬로그램임을 감안한다면 실로 엄청난 규모임을 가늠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에 의하면 고래는 산소를 생산하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성장을 도와 간접적으로 탄소 감축에 기여하기도 한다. 고래가 숨을 쉴 때 내뿜는 철분과 질소가 식물성 플랑크톤에게 중요한 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고래와 연계된 식물성 플랑크톤의 생산이 1퍼센트 증가하면 수억 톤, 약 20억 그루의 성숙한 나무가 책임질 수 있는 양의 추가 이산화탄소를 포집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고래는 여러모로 인간에게 이로운 동물인 데다가 포경은 엄연히 금지되어 있는 현실인데 한국에서는 고래가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 원래 울산이나 포항 등 주로 동해안에서 이뤄졌던 불법 포경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서해안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포경이 먼 바다에서 이루어지며 잡은 고래는 해체해 고기를 바닷속에 감춰 놓았다가 한밤중에 뭍으로 옮기기 때문에 현장 단속도 거의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이런 불법 행위와 더불어 합법 포획마저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충격적이다.
일단 불법 포획은 2020년의 해양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5년 동안 전부 54마리(국내 해역)이다. 하나도 아쉬운 게 고래이니 54마리면 적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인데, 고래 보호 운동가들은 가벼운 처벌을 문제로 꼽는다. 적발되더라도 불구속 입건돼 벌금 수백만 원을 내는 수준에서 처벌되므로 근절이 어렵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가 2018년부터 2022년 4월까지 고래 불법 포획 및 유통과 관련해 법원에서 선고한 71건의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해 보니 포경선 선장 외의 선원들은 대부분 몇백만 원의 벌금형과 집행유예를 받고 있음이 밝혀졌다. 식용으로 쓰이는 밍크고래 사체의 판매 가격이 평균 5천만 원, 최대 1억 원을 웃도는 현실이니 처벌이 가볍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정말 법대로 하자면 고래를 불법 포획 및 운반, 유통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져야 한다.
한편 합법 포획은 어업 활동 중 고래가 우연히 잡힌 상황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상업 목적의 포경이 금지된 건 1986년이지만 오늘날까지도 우연히 잡힌, 즉 혼획된 고래의 위탁 판매는 여전히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보호종이 아닌 낫돌고래와 밍크고래만 가능하며, 국내 해안에 서식하는 고래류 총 35종 가운데 참고래·귀신고래·남방큰돌고래·대왕고래·보리고래·북방긴수염고래·브라이드고래·상괭이·향고래·혹등고래·범고래·흑범고래 등 12종은 보호종으로 분류돼 유통도 판매도 금지되어 있다.
그렇지만 한국 해안에서 이루어지는 고래의 혼획이 정녕 우연의 산물일까?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2016~2020년 5년 동안 국내 연안에서 혼획된 고래는 연평균 1,408마리로, 국제포경위원회(IWC) 가입국 평균의 몇십 배에 이른다. 수치가 이쯤 되다 보니 진짜 혼획이 아닐 것 같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고래가 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쳐서 잡고는 혼획인 양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이처럼 소위 혼획되는 고래가 많다 보니 판매금액의 규모도 커서 2018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평균 30억 원 수준이다.
해수부는 2021년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고시(고래고시)’를 개정해 좌초 혹은 표류된 고래류의 판매를 금지했다. 개정 이전에는 바닷가로 떠밀려온 고래 사체를 어업인이 발견할 경우 해경에서 처리확인서를 받아 수협을 통해 판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규정을 악용해 고래를 불법 포획한 뒤 표류한 사체를 발견한 것처럼 속여 판매하는 사례가 늘자 법령을 고친 것이다. 그런 가운데 혼획으로 잡힌 고래의 판매를 금지하지 않아 결국은 불법 포획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이다. 핫핑크돌핀스는 2021년 식용으로 시중에 유통된 밍크고래를 약 200마리 정도라 추산한다.
그래서 이렇게 유통된 고래는 대체 어떻게 소비되는 것일까? 놀랍게도 한국은 옆 나라 일본과 더불어 고래고기를 먹는 대표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밍크고래와 참고래 등 수염고래류가 주로 소비되는데, 울산 장생포와 포항 죽도시장, 부산 자갈치시장 등에서 많이 취급한다. 조리법은… 끔찍해서 굳이 여기에 늘어놓고 싶지 않다. 왜 끔찍하느냐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포경의 현실이 빤한데 고래고기를 미식 식재료인 양 추켜세워 주는 기사들 일색이기 때문이다. 쇠고기와 비슷하다고 말하고 실제로 그렇게 먹는 경우가 많이 소개되고 있다.
덴마크령 페로제도 또한 전통이라며 포경을 멈추지 않는데 좀 더 악질이다. 매년 여름 그라인다드랍(Grindadrap)이라 불리는 고래 사냥 축제를 벌여 800~1,400마리에 이르는 고래를 죽인다. 어선이 고래 무리를 해안가로 몰아넣으면 주민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뭍으로 끌어내 작살 등으로 도살하는 방식이다.
페로제도는 약 1천 년 묵은 전통이라고 강변하지만 설득력은 크게 없다. 이렇게 잡은 고래를 식용으로 소비하는 섬 주민이 이제는 20퍼센트 수준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소비도 하지 않을 고래를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죽인다는 말인데, 그 탓에 매년 여름이면 페로제도의 근해가 피로 빨갛게 물든다.
그래서 꼭 잡아야만 하는 걸까? 늘 이런 상황에서는 전통이 정당화의 도구로 멱살 잡혀 끌려 나온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고래고기가 전통 식문화라 주장하는 경우를 본다. 물론 지역에 국한되는 전통이라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도 대체로 결핍이 수요를 낳았던 사례라 볼 수 있다.
과거에 식량이 부족했기에 고래고기에도 손을 댄 것 아니냐는 말이다. 이는 한국은 물론 일본과 페로제도에도 모두 공평하게 적용할 수 있는 반론이다. 전 세계적인 식량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한국에서도 미국이나 호주산으로 쇠고기의 수요를 채우는 현실에서 과연 고래고기까지 먹어야만 하느냐는 말이다.
누가 누구의 문화와 전통을 가치 판단의 도마에 올려 난도질하려 드느냐는 쓴소리를 듣겠지만 그래도 고래고기의 소비와 이로 인한 포경의 정당화는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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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 음식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