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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통신] 가을저녁 달 생각

2022-09-01 (목) 진월 스님 (리버모어 고성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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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9월의 시작일, 이제 제대로 가을철의 문턱을 넘어서는 기분을 느낍니다. 한국 전통문화에 익숙한 분들이 활용하는 [태]음력으로는 팔월초엿새이고, 다음주말 보름에 추석/한가위 명절을 맞게 됩니다. 이곳 미국은 다음 주 월요일을 노동절(Labor Day)로 기리며, 이번 주말부터 3일간 연휴를 누리게 되지요. 한국에서는 금년에 추석연휴로 나흘을 즐기는 줄 압니다. 오래전 농경시대부터 무덥고 지루하던 여름을 마감하며, 그동안 들판에서 가꾸고 키운 곡식과 과일들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하면서, 그토록 열매 맺도록 음우해주신 하느님과 조상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차례를 지내고, 노동의 보람을 누리며 이웃들과 어울려 기쁨을 나누는 기회를 가져왔지요. 약 400년 전 유럽으로부터 처음 미주에 온 초기이민들부터 기려왔던 이른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같은 풍속을, 한국에서는 이미 2000년 전부터 이어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 좋은 시절에 즈음하여 각자 나름대로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보기 바랍니다.

‘추석(秋夕)’은 순 우리말로 ‘가을저녁’이라고 풀어쓸 수 있겠지요. 한낮에는 여름에도 더위 속에 농작물을 키우는 일에 힘들었지만, 가을에도 아직 거두고 마무리하는 일을 이어가야하는 벅찬 분위기에서, 휴식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시원한 가을 저녁은 정말 후련히 즐길 수 있는 좋은 때로서 누구나 기다려지는 시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가을철 어느 날의 하룻밤만 지칭하지는 않겠지만, “추석”이라고 하면 ‘팔월보름날’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달 밝은 보름 저녁에 주목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쪽에서는 영어로 만월절(Full Moon Day)이라고도 하며, 중국사람들은 달떡(月餠 Moon Cake)이라 부르는 과자를 나누어 먹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송편 즉, 콩과 팥 및 깨와 꿀 등 여러 가지 속을 넣어 만든 둥근 달 모양의 쌀떡을 솔잎 위에 쪄서, 사뭇 향기롭고 맛있게 만들어 즐기는 전통이 있지요, 흰 쌀가루를 여러 가지 빛깔로 물들여서 다양한 예술 감각을 보이며, “보기도 좋고 맛도 좋은” 송편을 만들어 별미를 즐기기도 합니다. 집에서 직접 만들기 어려운 분들은, 교포들이 운영하는 떡집이나 시장에서도 구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을저녁 보름달 아래서, 송편과 차를 드시며, 옛적의 정취를 누려보시기를 제안하고 권합니다.

산승의 아란야 고성선원의 가을저녁 특히, 달 밝은 밤에는 사람과 자연이 하나같이 되어 관망과 상상이 자유롭게 날개를 펼칩니다. 이 몸의 눈(肉眼)과 마음의 눈(心眼)으로 보이는 하늘과 달, 산과 숲을 통하는 과거와 현재 및 미래, 시간과 공간 및 의식과 초월의 여러 차원이 교차 소통되는 화엄법계(華嚴法界)의 걸림 없는 성품이 일어나(無碍性起) 전개됩니다. 덧없음(無常)과 나없음(無我)의 올바른 길(中道) 온갖 인연들이 끊임없이 일어남(無盡緣起)을 보고 살피며, 그 멋을 즐기고(鑑賞) 맛보는(吟味) 고요한 선정도량의 적막강산은 환하게 밝으면서도 눈부시지 않습니다. 텅 빈 하늘과 시원한 바람,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아늑한 온 누리 가운데에 청아한 풀벌레들의 시절노래가 겁외가(劫外歌)처럼 산골에 사무칩니다.

한 호수의 배위에서 홀로 술에 취해 달을 건지려다 물에 빠졌다는 이태백의 옛이야기와 근래 달을 거쳐 화성을 탐사하려는 계획을 진행 중인 나사(NASA)의 요즈음 소식이 뒤섞이고, 우크라이나의 밤을 가르는 러시아의 미사일 포격과 지구촌에 오락가락하는 팬데믹 구름 및 솟아오르는 물가고의 바람도 잦아들지 않으며, 가뭄과 물난리 등등, 여기저기 서민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져 가는 실정. 그래도 이제 가을 철 들어 잠시나마 마음을 가다듬고 고요히 맑히며, 번뇌 망상과 격정을 가라앉히고 푹 쉬어서, 진흙 속에 연꽃 피우듯, 각자 나름대로 세상의 주인노릇을 잘 해보려고 다짐하는 때로 삼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진월 스님 (리버모어 고성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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