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 스님 특강 ‘한류의 근원, 한국학과 한국불교’(3)] 봉준호 영화와 단전성, 한국 스포츠와 선(禪)
2022-08-25 (목)
◇봉준호 영화와 단전성 문화 : 아카데미상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60여개 세계영화제에서 170여개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세계의 영화판을 ‘도장깨기’ 하듯 정복해가고 있다. 봉 감독은 인터뷰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에 전 세계가 매료된 것 같다”고 했다. 이는 한국적 독자성과 특수성이 곧 세계적 문화코드임을 의미한다.
기생충을 보면 주연과 조연의 구분이 모호하고 선악의 이분법도 보이지 않는다. 악당이 없는 비극과 광대가 없는 희극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원한 선악이 없다는 무아의 진리와 영원한 행복이 없다는 무상의 법인이 잘 실현되어 있다. 초코파이 박스 위 정이라는 글자는 한국인의 영원한 화두이자 상징이다. 정이 많고 우호적인 한국인의 특징은 희노애구애오육이라는 칠정의 복합성과 관련되어 있다. 장르파괴자 혹은 장르창조자로서의 봉준호는 작품 속에 코미디(喜) 액션(怒) 비극(哀) 스릴러(懼) 멜로(愛) 호러(惡) 판타지(欲)의 칠정(七情)을 총망라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는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총체적 마음에 대한 통찰인 한국적 심학(心學)에 대한 감독의 무의식적인 오마주는 아니었을까.
봉준호 영화가 재미있는 것은 풍자와 클랙코미디의 적절한 배치에 힘입은 바 크다. 프랑스 예술가가 붙여준 ‘삑사리의 예술’인데 달리 말해 힘이 빠진 ‘생력의 유머’라 할 수 있다. 선학에 의하면 착력된 관념을 여의고 힘이 완전히 빠져 있을 때 단전에 기운이 원활히 모이고 선정에 도달한다고 한다. 이렇듯 봉준호의 유머감각은 힘빠짐의 생력과 집중의 득력이라는 단전성의 특징까지 함유하고 있었다.
◇한국스포츠의 저력과 선(禪): 세상의 모든 것은 깊어지면 선이 된다고 한다. 몸과 마음을 일체화하여 정신을 집중하고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쓰는 것이 목표를 두는 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처음 참선을 배울 때 힘을 빼지 못해 많은 고생을 했다. 심지어 안거기간 중 손빨래를 하다가도 온몸에 가득 힘을 주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다음부터 용을 쓰지 않고 설렁설렁 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힘을 뺀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잔뜩 힘을 주는 초보자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도달하게 되는 고수들의 경지가 바로 힘을 빼는 것이다. 스포츠만 아니라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다. 수신이 곧 수심이요, 잘 하려면 마음을 더 내려놔야 한다. 한국인이 가장 강한 골프 양궁 사격 등은 상대편이 있긴 하지만 자신의 내면과의 싸움이 더욱 본질적인 선적인 것들이다. 일본 프로야구 선수시절 막판에 떨어진 구속을 힘을 뺀 제구력으로 만회하며 타자들을 압도한 국보급투수 선동열, 힘을 뺀 타격으로 슬럼프를 극복한 국민타자 이승엽, 2010년 밴쿠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에서 금강경의 항복기심을 연상케하는 강심장을 보여준 김연아, 평발이지만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볐던 산소탱크 박지성, 골문 앞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상대 수비수를 유린하는 손흥민 등은 육체적인 훈련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힘을 기르고 강한 정신력을 탑재하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고 한다. 한국 스포츠의 저력에는 이처럼 선스타일이 조용히 장착되어 있다.
<요약정리-정태수 기자, 9월1일자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