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이었다. 필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친구가 스파클링 와인을 가져왔다. 친구는 병을 위아래로 힘껏 흔들고는 마개를 땄다. 그 순간 코르크가 치솟아 천장에 달린 전등의 테두리가 깨지고 말았다. 게다가 분수처럼 솟구친 와인 포말이 사방으로 튀어 케이크는 물론이고 옷과 벽을 버렸다. 충분히 칠링(차갑게 하는 것)되지 않은 와인을 흔든 탓이었다.
옛 기억 탓인지 필자는 소믈리에 대회를 관람할 때면 스파클링 와인을 어떻게 서빙하는지 자세히 살핀다. 먼저 소믈리에는 아이스 버킷 안에서 충분히 차가워진 와인병을 꺼내 리넨(냅킨)으로 물기를 닦는다. 와인병을 바닥에 세운다. 코르크를 감싼 알루미늄 포일을 벗긴다. 철제 캡이 덮인 코르크 상단을 엄지손가락으로 누른 상태에서 단단히 조인 철사를 여섯 바퀴 돌려 푼다. 와인병을 비스듬히 들고 한 손으로 코르크를 잡고(코르크 상단을 누른 상태에서) 다른 손으로 병 아랫부분을 돌린다. 그러면 병 속의 압력 덕분에 코르크가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이때 거품이 병 밖으로 흘러넘치지 않도록 조심한다. 또 소리가‘펑~’ 하고 크게 들려서는 안 된다.
■안면 보호대 쓰고 스파클링 와인 노동자들이 일한 이유
이처럼 스파클링 와인을 논할 때는 ‘마개’를 빼놓을 수 없다. 초기 샴페인 하우스 노동자들은 철망으로 된 안면 보호대를 쓰고 일했다. 병 안의 높은 압력 탓에 튀어나오는 코르크에 맞아 다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병 속의 압력을 조절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몰랐고, 코르크 마개를 단단히 잡아주는 뮈즐레(코르크를 철제 캡과 철사로 봉인하는 장치) 또한 고안되기 전이었다.
오늘날 샴페인 병 속의 압력은 5, 6기압이나 된다. 다치거나 깨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마개를 열 때는 반드시 사람이나 물건이 없는 곳을 향해야 한다. 필자는 손이 작고 악력도 약한 탓에 소믈리에처럼 마개를 열 수는 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이 있으니, 병을 탁자에 세워놓고 코르크를 살짝 돌리면 코르크가 서서히 빠져나온다. 이때 완전히 빠져나올 때까지 코르크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
멋있기로는 사브르(프랑스군이 썼다는 칼)로 코르크를 오픈하는 ‘사브라주(Sabrage)’라는 방법이 최고다. 나폴레옹 군대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졌는데, 애호가들이 재미 삼아 혹은 특별한 날에 이 방식을 쓰기도 한다.
여타 와인과 마찬가지로 스파클링 와인 또한 마실 때 온도가 중요하다. 7, 8도 정도의 온도로 마시면 상큼하게 맛있다. 오래 숙성된 고급 스파클링 와인은 9, 10도 정도의 온도로 마시기도 한다. 온도가 좀 더 높으면 복합적인 와인 풍미를 더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온에 보관된 스파클링 와인은 마시기 전 물과 얼음을 채운 아이스 버킷에 20~30여 분 넣어두면 좋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냉장고에 두어 시간 넣어도 좋다.
■ ‘위대한 게츠비’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의 착각
스파클링 와인은 스틸 와인과는 달리 기포가 있다. 와인에 이산화탄소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스파클링 와인을 주로 길고 좁은 플루트 모양이나 길쭉한 트럼펫 모양 잔에 따르는 것도 기포를 즐기기 위함이다. 다만 이때 거품을 조심해야 한다. 먼저 넘치지 않을 정도로 반쯤 따른다. 거품이 가라앉길 기다렸다가 한두 차례 첨잔해 잔의 70~80%를 채우면 기포가 긴 잔을 따라 ‘까르르’ 올라온다.
참고로 영화 ‘위대한 게츠비’에 나오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들고 있는 바닥이 낮고 넓은 쿠페형 잔은 고풍스럽기는 하지만 스파클링 와인의 풍미와 기포를 즐기기에는 알맞지 않다.
오래 숙성된 고급 스파클링 와인의 경우 복합적인 향을 음미하기 위해 취향에 따라 화이트 와인 잔이나 넓은 레드 와인용 잔을 쓰기도 한다. 근래에는 기포도 즐기면서 복합적인 풍미도 음미할 수 있도록 고안된 튤립 모양의 잔이 애용된다.
스파클링 와인은 온도에 민감하다. 대개 잔 또한 플루트형을 쓰기 때문에 와인을 마실 때는 잔의 스템(stem)을 잡는 게 좋다. 물론 ‘이렇게 하면 더 좋다’는 것일 뿐 ‘절대 법칙’은 아니다. 저마다 편한 방법을 택해 마시면 될 뿐.
스파클링 와인은 크게 ‘전통’으로 만드는 방식과 ‘편리’하게 만드는 방식이 있다.
전통 방식은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샴페인을 만드는 방식에서 비롯했다. 이미 발효가 끝난 와인을 일일이 병에 담아 효모와 당분을 첨가해 또 한 번 발효시킨다. 이때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이 추가로 발생한다. 이산화탄소는 와인에 녹아 기포를 만든다. 효모는 역할(재발효)을 마치면 죽지만 자가분해해 브리오슈나 갓 구운 빵의 구수한 풍미를 낸다. 이 과정을 프랑스어로 ‘쉬르 리(Sur lie)’라고 한다. ‘죽은 효모 위에서 와인을 숙성한다’는 뜻이다. 오래 숙성할수록 기포는 섬세해지고 풍미는 풍부해진다. 규정된 숙성 기간이 지나면 병 입구에 효모 찌꺼기를 모아 제거한 다음 빠진 만큼의 와인과 당분을 첨가해 마무리한다.
전통방식으로 만든 와인 레이블에는 언어에 따라 메토드 트라디시오넬(Mthode Traditionnelle), 메토도 클라시코(Metodo Classico), 트레디셔널 메소드(Traditional Method), 클래식 메소드(Classic Methode) 등으로 표기한다.
■러시아의 ‘샴페인’ 내로남불
샴페인 명칭과 표기가 이렇다 보니, 이와 관련한 ‘사건’이 많다. 화장품/향수 브랜드가 ‘샴페인’ 명칭을 썼다가 패소해 명칭을 바꾸는 일이 있었다. 러시아는 이 규정을 무시해 비난받기도 했다. 자국으로 수입되는 샴페인에는 ‘샴페인’이라고 쓰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 생산하는 스파클링 와인, 샴판스코에를 의식해서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상파뉴의 여러 샴페인 하우스가 반발했지만, 러시아의 수입 물량이 워낙 많은 터라 결국 ‘스파클링 와인’으로 표기하고 말았다. 얼마 전 미국 스파클링 와인의 레이블에서 법으로 금지한 ‘메토드 상프누아즈’라는 표기를 발견하고선 적이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아무튼, 프랑스의 샴페인과 크레망은 모두 전통 방식으로 만든다. 스페인의 카바도 방식이 같지만, 숙성 기간이 짧고 기계 작업이 많아 값이 저렴해 가성비가 좋다. 이탈리아의 프란차코르타도 같은 방식으로 만든다. 그 외에도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칠레, 남아메리카공화국 등지에서도 고급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 때는 전통 방식을 쓴다.
‘편리’하게 만드는 방식은, 큰 통에서 1차와 2차 발효를 한 다음 병에 담는 방법이다. 이를 탱크 발효 방식 또는 샤르마 프로세스(Charmat Process)라고 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스파클링 와인이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프랑스의 ‘크레망’ 스페인의 ‘카바’
스파클링 와인은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그중 유명한 와인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샴페인’은 앞서 언급했듯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에만 붙일 수 있다. 같은 프랑스라도 상파뉴 외의 8개 지역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은 크레망(Crmant)이라고 부른다.
스페인에서는 ‘카바(Cava)’라고 부른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젝트(Sekt)’,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캡 클라시크(Cap Classicque)’라고 이름한다. 미국·오스트레일리아·칠레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스파클링 와인(Sparkling Wine)’이라 칭한다.
이탈리아는 조금 복잡하다. 전 국토에서 와인이 생산되는 만큼 주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르지만 총칭해 ‘스푸만테(Spumante)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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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실 시대의창 대표(와인 어드바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