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생각 - 다음 차례를 위한 배려

2022-07-22 (금) 제이 송/뉴욕 용커스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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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처음 와서의 일이다. 30년 전 그 당시는 지금처럼 가족 단위로 뉴욕에 오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단신으로 와서 불법체류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막일을 했다. 힘든 뉴욕 생활을 하면서도 그들에게는 꿈과 웃음이 있었다. 돈을 한 푼 두 푼 열심히 모아 고국에 두고온 가족에게 송금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큰 아들 대학 등록금을 다음 달에 보내야 한다고 1, 2시간도 모자라 또다른 가게에서 네 시간을 더 일하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내년에 결혼하는 자식 결혼자금 때문에 쉬는 날 없이 7일을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아파트 한달 월세 천 달러 가까이 내면서 산다는 건 언감생심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신분 있는 사람이 원 베드룸을 하나 얻어서 거실과 방에 5, 6명이 함께 모여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그렇게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한 집안에서 5, 6명이 함께 공유하며 생활하는데에는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식사는 각자 일터에서 해결하며 집에 와서는 취사하는 일이 별로 없어 그런 일로 불편을 겪거나 문제 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문제는 화장실과 욕실 쓰는 일로 무척 불편했다. 지금도 달라진 건 없지만 사람이 화장실 안에 있으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에 아침에 화장실 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에 일터에 나가는 사람과 야간에 일 마치고 들어오는 시간에 샤워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다 안에 사람이 없어서 들어가서 보면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지지 않을 수가 없다. 욕조에 비누 거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머리털은 배수구에 수북이 쌓여 다음 사람이 사용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내가 보기에 이건 아니다 라고 샤워장을 쓰고 나온 사람에 충고라도 한마디 하게 되면 ‘도덕책 어디에 그런 게 있느냐.“고 하며 남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간섭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던지 참견하지 말라‘는 얘기다.

난 그 자리에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거기서 얘기가 길어지면 싸움이 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나이가 나보다 어리다면 내가 먼저 참아야 하는 것이 현명한 처신이겠지만 상대가 나보다 연배 되는 사람이라서 그 사람의 인격의 수준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억제했다.

내가 하는 행동이 남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불편을 주는 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플러싱에서 맨하탄으로 운행하는 7번 전철은 시설이 노후되어 선로보수 작업으로 주말만 되면 출퇴근 하는 사람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언젠가의 일이다. 7번 전철이 메츠 구장에서 출발한다는 안내문을 지하철 종점 입구에 덕지 덕지 붙여놓고 셔틀 버스를 운행했다.


사람들이 귀가하면서 메츠 구장 역에서 셔틀 버스를 탈 때였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셔틀버스가 서있는 곳으로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현장에 나와 있는 전철 직원의 통제 하에 모두들 줄을 서서 다음 차례의 버스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버스 한 대가 왔다. 질서정연하게 차례를 기다리던 줄이 엉클어지며 갑자기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한두 사람의 몰지각한 행동에 의해서 생긴 일이었다. 질서가 무너지고 제일 앞에 서서 기다리던 사람이 또다른 뒷차를 기다려야 하는 것을 보면서 억울함을 느꼈다. 질서를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지는 못할망정 불공평한 일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되겠다.

남을 배려하는 아량이 조금만이라도 있다면 힘든 세상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내 자신부터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행동할 때 이웃이 아름다워지고 더 나아가 사회가 아름다워 질 것을 믿는다.

<제이 송/뉴욕 용커스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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