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항한인감리교회1908년부터1912년 발행
▶ 샌프란시스코 3곳서, 일제 압박 재정난 폐간
‘대도’가1908년 12월 창간된 샌프란시스코 2350 캘리포니아 스트릿 건물을 유고명 역사 보존위원장이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미주에서 최초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발간된 한글잡지 ‘대도’(大道 .The Korean Evangel)의 발행장소가 확인 됐다.
상항한인감리교회(현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 담임 송계영 목사)가 1908년 12월21일 발행을 시작한 ‘대도(大道)’는 정간과 복간등을 거치며 1912년 7월까지 발행되다가 일제의 압박에 의한 재정난으로 페간 됐다. ‘대도’는 당시 상항한인감리교회 담임이던 양주삼 전도사를 주필, 리드(C.F.Reid,한국명 이덕)감리사를 사장으로 공립신보사에서 매호 1천여부 인쇄하여 국내외에 보급했다.
상항감리교회 연혁 자료에 의하면 ‘대도’는 상항한인감리 교회가 1906년 12월 샌프란시스코 2350 캘리포니아 스트릿으로 이전한 이듬해인 1908년 12월21일 양주삼 전도사를 주필로 창간됐다. 3층인 이 건물은 1층은 식당, 2층은 예배당, 3층은 숙소로 사용하면서 ‘대도’를 발행했다. 양주삼 전도사는 창간호에서 “하나님의 자손인 한국사람에게 도덕과 규범을 광포코자 함인고로 이 월보의 이름을 ‘한인들에게 큰 도를 전파한다’는 뜻으로 ‘대도’로 칭한다”고 발행 목적을 선언하고 있다.
‘대도’는 기독교의 복음과 신학사상을 전하고 도덕성을 배양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으나 국제소식과 근대학문을 소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함으로써 개인과 교회와 민족이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큰 길(대도)을 보여주는 그릇“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대도’가 1908년 창간된 캘리포니아 스트릿의 3층 건물은 7월4일 현지 답사 결과 잘 보존되어 있었다.
‘대도’를 1911년부터 1912년 8월 폐간시까지 발행했던 2123부시 스트릿 건물
1908년 12월 ‘대도’(大道) 창간호 표지
‘대도’는 1909년 9월14일 교회와 대도 사무실은 샌프란시스코 1762오패랄(O’Farrel) 스트릿으로 이전후 윤병구 전도사를 주필로 발행되었다. ‘대도’는 발행장소를 옮긴 후 1910년 11월부터 정간 상태에 있다가 1911년 5월에는 2123 부시(Bush) 스트릿으로 이전했다. 이대위 목사가 주필로 부임후 8월 복간하여 발행하다가 1912년 8월 폐간됐다. 현재 오페랄 스트릿 의 ‘대도’ 사무실 자리는 재개발되어 당시 건물은 없어진 상태이다. 이와 같이 장소를 옮겨가며 발행되던 ‘대도’에는 서재필, 박용만, 이승만, 신흥우, 윤치호 등 민족 지도자들의 글과 연설도 실렸다. 특히 1910년 8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후에는 일제의 한국 침략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대도’ 9월호에는 정면으로 한일합방을 반대하고 조약 무효의 논조를 게재했다. ‘대도’를 주시하고 있던 일제는 한국에 배부하고 있던 450부의 국내 유입을 차단함으로써 경제적인 타격을 가했다. 이러한 연유로 정간되었던 ‘대도’는 이대위 전도사가 부임 후 1911년 8월 복간되었으나 계속되는 재장난으로 1912년 7월호를 마지막으로 다시 빛을 보지 못 하게 되었다.
‘대도’ 발행 현장을 함께 답사한 유고명 역사보존위원장(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평신도 대표)은 “초기 이민 선조들이 남긴 위대한 신앙의 발자취를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보존된 현장을 볼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유석종 목사(전 상항한국인 감리교회 담임)는 “대도는 미주에서 발간된 최초의 한글 잡지로서 조국을 잃고 방황하던 한인들의 신앙과 사상을 대변하고 민족과 이민 사회와 교회가 개척해 나가야 할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 큰 길이 되었다”고 ‘애국지사 이대위’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가 창립 100주년을 맞아 2003년 출판한 ‘샌프란시스코의 한인과 교회’ 책자에서는 “’대도’는 재미한인기독교의 신학적 초석’으로 기록하고있다. ‘대도’는 한국 기독교회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어 한국교회사문헌연구원이 영인본으로 출판하여 보급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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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