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교 자퇴 ‘수포자’…‘수학계 노벨상’ 필즈상 수상

2022-07-0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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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인 수학자 최초 허준이 프리스턴대 교수

▶ 40세 미만 ‘젊은 수학자’에 수여, 50년 난제 ‘로타 추측’ 증명 업적

고교 자퇴 ‘수포자’…‘수학계 노벨상’ 필즈상 수상

5일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가‘수학 노벨상’ 필즈상을 수상하고 있다. [연합]

한인 수학자로는 최초로 허준이(39. June Huh) 프린스턴대 교수가 ‘수학 노벨상’ 필즈상의 영예를 안았다.

국제수학연맹(IMU)은 지난 5일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허 교수를 필즈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한인 수학자로는 최초의 수상이다.

1936년 제정된 필즈상은 4년마다 수학계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고 앞으로도 학문적 성취가 기대되는 40세 미만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수학 분야 최고의 상으로 아벨상과 함께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허 교수는 수상 뒤 “필즈상 수상자 명단에 제가 하는 분야인 대수기하학에 큰 공헌을 하신, 저에게는 영웅 같은 분들의 이름이 줄줄이 있다”며 “그 명단 바로 밑에 내 이름이 한 줄 써진다고 생각하면 이상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제게 수학은 제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가는 과정일 뿐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일”이라며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일에 의미 있는 상까지 받게 돼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필즈상은 한번 시상할 때 보통 2~4명의 수상자를 선정해 금메달과 함께 1만5,000 캐나다 달러를 상금으로 수여한다. 이날 시상식에선 허 교수 외에 3명이 공동 수상했다. 수상자 중에는 우크라이나의 마리나 비아조우스카도 포함됐다. 나이 제한 때문에 39세(1983년생)인 허 교수에게는 올해가 필즈상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해였다.

허 교수는 또 필즈상 수상자 선정 이유에서 나열한 결과와 논문들을 보면 “제가 혼자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동료들과 같이 진행한 연구들이 많다”면서 “그 동료들을 대표해서 제가 큰 상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이를 계기로 앞으로 더 꾸준히 신나고 재미있게 연구하고 공부하는 삶을 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허명회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와 어머니 이인영 서울대 노어노문과 명예교수의 아들로 스탠포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할 때 허 교수가 태어났다. 두 살 때 한국으로 돌아온 뒤 초등학교부터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물리천문학부 학사, 같은 대학원 수리과학부 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시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특히 허교수는 ‘리드 추측’과 ‘로타 추측’ 등 오랜 수학 난제들을 하나씩 증명하면서 수학계에 명성을 떨쳤다. 리드 추측은 채색 다항식을 계산할 때 보이는 계수의 특정한 패턴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1968년 제기된 수학계 난제 가운데 하나였다.

필즈상 수상자 대부분이 유년시절부터 ‘천재성’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과 달리 허 교수의 초등학생 때 수학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스스로 수학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허 교수는 2017년 온라인 수학·과학 전문 매체 ‘콴타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수학을 ‘논리적으로 필요한 진술이 산더미처럼 쌓인 메마른 과목’이라고 봤다”면서 “진짜 창조적 표현을 하고 싶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습작 활동을 하며 시인을 꿈꾸던 허 교수는 ‘생계유지’ 방편으로 과학 기자로까지 눈을 돌리다 갑작스럽게 인생의 대전환을 맞게 된다. 학부 졸업반 때 서울대의 노벨상급 석학 초청 사업으로 초빙된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면서다. 히로나카 교수는 1970년 필즈상을 받은 일본의 대표적인 수학자다. 자신의 첫 번째 과학 기사 인터뷰 대상을 히로나카 교수로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의 대수기하학 강의를 수강했고 히로나카 교수와 점심 때 수시로 만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다가 20대 중반에 본격적인 수학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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