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골프계를 통째로 집어삼킨 최근의 논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필 미켈슨을 비롯한 세계 최정상급 골퍼들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최하는 새로운 골프 대회인 LIV 골프 인터내셔널 시리즈의 정규 투어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들은 스폰서인 사우디 측과 어마어마한 금전적 혜택을 보장받는 파격적인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대해 골프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PGA는 이들 17명의 선수 전원에게 PGA투어 출전정지 처분을 내렸다.
사우디는 무분별하고 잔인한 행동으로 오물을 뒤집어쓴 정권의 ‘이미지 세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에 대해 PGA가 초강수로 대응한 이유는 분명치 않다. LIV 시리즈에 하자가 있다고 본 것인지, 아니면 적절한 골프 투어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뚜렷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저 일찌감치 경쟁의 싹을 도려내려는 시도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LIV 시리즈 스폰서의 자격과 관계가 있는 걸까?
골프 전문 주간지인 ‘프로골프’의 서베이에 응한 PGA 등록선수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켈슨에 대한 출전 정지 처분을 ‘미디어/취소문화’ 탓으로 돌렸다. 필자도 그들의 생각이 맞기를 바란다. 거액의 계약료를 챙기는 대가로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인을 살해하고 골절단기로 사체를 토막 낸 정권에게 호의적인 PR을 제공하는 것이 해당 골퍼들의 등록 취소를 정당화하는 사유가 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 같은 조치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미켈슨을 비롯한 17명의 프로 골퍼들은 무도한 폭력정권이 원하는 PR을 기꺼이 제공했다.
필자가 볼 때 문제의 본질은 PGA가 선수들이 넘어선 안 될 금도를 발견했느냐 안했느냐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미국의 숱한 엘리트들이 아예 도덕적 기준선을 갖고 있지 않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취소문화의 확산은 배반 문화의 성행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하거나 불길하게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돈이 된다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는 사회적 최상층에 속한 인사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트럼프가 백악관을 떠나기도 전에, 그의 사위와 재무장관은 중동 투자자들에게 사사로운 추파를 던졌고, 결국 사우디와 걸프지역의 다른 정부들로부터 막대한 액수의 ‘투자’를 받았다.
그러나 이건 정치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지난 일요일, 중도노선을 표방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브루킹스 인스티튜션의 사장은 카타르를 위해 그가 벌인 불법 로비 정황을 포착한 연방수사국(FBI)이 수사에 나서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외국정부에 고용돼 활동하는 것은 법적 근거를 지니지만 대가를 받고 외국의 에이전트로 활동하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것은 범죄에 해당한다. 물론 외국 정부에 로비스트로 고용되는 것이 의심스런 국내 기업들에 팔리는 것보다 도덕적으로 더 나쁜 일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지난 가을, 암호통화 거래소인 크립토닷컴(Crypto.com)이 진보성향의 유명 배우 맷 데이먼이 등장하는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을 때 필자는 낙심했다. 아마도 데이먼은 암호화폐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을 뿐 아니라 숱한 애널리스트들이 암호통화의 목적에 강한 회의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 또한 몰랐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크립토닷컴의 출연 제의를 받아들여 광고에 등장했다. (래리 데이빗은 또 다른 크립토 회사의 수퍼볼 광고도 제작했다.) 크립토닷컴의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데이먼은 허위 정보를 이용해 가격을 펌프질 한 후 팔아치우는 이른바 펌프-앤-덤프 가치조작극에 가담한 셈이 됐다. 공교롭게도 광고가 나간 후 지금까지 암호통화의 가치는 1.6조 달러 이상 떨어졌다.
하지만 이건 과거부터 늘 그랬던 것이 아닐까? 문명의 여명기부터 인간은 힘과 유명세를 현금화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그러나 이전에는 이름을 팔아먹는 망덕 행위에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제재와 거센 비난이 뒤따랐다는 식으로 과거를 미화할 의도는 없다. 여기서 1967년으로 잠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자본주의 옹호론자와는 거리가 먼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는 대기업의 수장들이 ‘개인적 영리행위’를 금지한 ‘코드’에 묶여있고, ‘높은 수준의 개인적 도덕성’을 준수한다고 말했다. 필자는 그가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 당시의 문화는 공인과 사회 지도급 인사들에게 그 정도의 품격 유지를 요구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제럴드 포드가 퇴임이후 유료 강연과 대기업 이사직을 통해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미국인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음은 필자의 경우다. 필자 역시 뉴욕타임스가 정한 규칙 안에서 가끔 유료 연설을 한다. 물론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필자는 스폰서가 문제 인물인지 아닌지를 사전에 철저히 확인하고, 돈을 받고 무언가를 띄워주는 식의 광고성 연설은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다시 골프 얘기로 돌아가자. 미켈슨은 뼈 절단 톱(Bone Saw) 투어와 계약을 맺으면서 이런 식의 허위 PR에 앞장선 셈이다.
금전적 이득 앞에 도덕적 원칙을 구부리는 양심팔이 문화의 성행을 무엇으로 설명할까? 정치적 계산이 깔린 세금감면 약속이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몫했을 수도 있다. 높은 수입을 보장받을수록 양심팔이는 한층 더 매력적이 된다. 치솟는 소득불평등도 수퍼-엘리트들과 보조를 맞추고 싶다는 욕망, 즉 부러움을 유발시킨다.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한다는 분별없는 물욕이 팽배하면서 비정상의 정상화가 터를 잡는다. 남들이 다 하는데 나 혼자 뒤처질 수 없다는 심리의 발동이다.
어떤 설명을 동원하건, 무언가 확실히 변하긴 했다. 우선 과거에 비해 최상위층의 부패가 심해졌다. 필자가 볼 때 부패의 경비에는 비도덕화가 포함된다. 어린이들은 공적 인물, 그중에서도 특히 스포츠 스타를 롤모델로 바라보았다. 과연 지금도 그럴까? 돈만 충분히 준다면 무슨 일이건 가리지 않는 타락한 공인을 어린이들이 그들의 귀감으로 삼을까?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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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