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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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을 맞는 4.29, 무엇을 터득했나

2022-04-26 (화) 서동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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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지역에 천재지변이나 사회적 소요사태가 발생하면 위정자들은 으레 한 소수민족이나 집단을 골라 희생양으로 삼아 그들에게 모든 혐의와 근거없고 악랄한 소문을 씌우고 성난 군중들이 분풀이의 대상으로 삼게 하는 것을 역사에서 볼 수 있다.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할 때 유대인들이 표적이 되었고 20세기 초 일본에서 관동지진이 발생했을 때 조센징이 대거 학살당했다. 그럴 때마다 성난 군중을 선동할 때 주류언론을 이용한다.

30년 전에 일어난 4.29폭동 당시 한인들이 표적이 된데도 주류사회의 언론, 일간지와 TV, 특히 LA 타임스와 ABC 채널7의 업적(?)이 막대했다. 성난 흑인들이 폭동을 저지른 주요 원인은 로드니 킹을 인정사정없이 폭행한 4명의 백인경관들에게 무죄를 선언한 사건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공교롭게도 시간적으로 이와 겹친 두순자 사건이 있었다.

두순자 사건 판결이 난 후 LA 타임스는 1주일 내내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겨우 1달러19전짜리 오렌지주스 한 병을 사러 들른 15세 흑인소녀와 가게주인이 실랑이를 벌인 끝에 어린 고객을 총으로 쏴 죽였다는 보도를 계속했고 TV는 TV대로 그 동영상을 연일 내보내고 또 내보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다룬 재판에서는 15세밖에 안 되는 어린 소녀로 묘사된 라타샤 할린스가 실제로는 덩치가 크고 건장하여 가게주인을 위에서 아래로 위압하고 있었고 솥뚜껑만한 주먹으로 연로하고 가냘픈 주인을 후려쳐서 두 번이나 넉다운 시킨 장면이 뚜렷하게 방영되었다. 그 외에 흑인지역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강도에 살해되고 시달렸으며 매일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르는 공포 속에 제대로 장사를 못한다는 사실 등이 법정에 제출되었다.

당시 이 사건을 맡은 판사는 임명된 지 얼마 안 되는 풋내기 판사로, 언론에는 전혀 비쳐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적나라하게 제시되니까 이를 참작하여 법에 따라 집행유예로 판결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불난 곳에 기름을 끼얹는 식으로 당시 샌퍼난도 밸리의 한 주민이 강아지를 학대했다는 혐의로 1주일 형을 받았는데 겨우 오렌지주스를 놓고 실랑이하던 어린 여자아이를 총으로 쏴 죽였는데 감방살이조차도 안 시킨다? 이것은 엄연한 인종차별적 처사다! 하여 성난 군중을 더 성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 커뮤니티는 고스란히 폭동의 희생양이 되어 결과적으로 많은 생명을 잃었고 LA 전체가 입은 8억 달러의 피해 중 우리 몫이 4억 달러였고 2,300개 이상의 한인업체가 물리적 피해를 입었으며 그 중 많은 점포가 폐쇄되었다.

4.29는 미주이민역사상 커다란 경종이 되었다. 우리 민족의 한 가지 장점은 아무리 큰 역경을 겪어도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뿐 아니라 전보다 더 발전하는 저력이 있다는 것이다. 부당한 4.29의 쓰라린 경험을 토대로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았고, 무엇보다 정치적 힘을 기르고 할 말을 할 줄 아는 커뮤니티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좀 부족한 구석이 있다. 우리 커뮤니티에는 정치인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를 적절하게 대변할 수 있는 대변인을 양성하는 일이다. 그런 인재를 양성하는 첩경은 많은 젊은이들이 저널리즘을 공부하도록 독려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장학재단들이 저널리즘 전공자들에게 많은 장학금을 제공하여 앞으로 우리를 대변할 제2의 앤젤라 오 변호사, 이경원(K.W. Lee) 대기자를 배양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본다.

<서동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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