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이 저물어 갈 즈음, 일본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친구 한 명에게서 협업을 제안하는 연락이 왔다. 대학원에서 만난 이 친구는, 나보다 기수로 두어 해 늦게 들어온 친구였는데 사실상 캠퍼스에서 같이 보낸 시간은 3년이 채 안 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이후로도 간간히 서로의 소식을 주고 받으며 마음을 나눈 사람이었다. 많이 알려져 있는 것처럼 대학원은 학교 밖의 사회에 비하면 작지만 나름의 견고한 룰과 권력 구조가 있고, 일에 찌들은 대학원생들의 들리지 않지만 고통으로 가득 찬(!) 신음과 절규가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지 않았더라도 쉽게 지나치고 잊을 수 없는, 나름의 유대감으로 엮인 이들이 많다. 이 친구 역시, 재학 동안 서로 이 고생 저 고생하는 것을 보아왔던 사이라 더 막역하게 느껴졌기에, 다시 타지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것에 항상 마음이 쓰였다. 그럼에도 나보다 연구도 생활도 씩씩하고 야무지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응원과 안부 인사를 남기곤 했다.
그런 친구와 함께 하게 된 프로젝트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하게 나의 생활을 바꾸어 주었다. 한국 여성으로서, 또 외국인으로서 일본과 미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마주치고 경험하는 것들이 우리의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 몇 주간에 거쳐 묻고 또 대답해 나갔다. 나를 다른 아시안 동료와 착각하여 전 학과에 소개한 동료, 외모에 관한 지적과 함께 교수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칭찬 인양 쏟아내는 대학원 남학생, 그리고 그것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이불 킥한 사연,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잘라버리는 학부의 남학생 등등, 끝이 없는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여기서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일하고 살아 나가야 하는 지에 대한 복잡하고 어려운 마음을 한풀이 하듯 쏟아냈다. 내 얘기에 공감하고, 귀기울여주는 친구를 보며 팍팍한 나의 생활에 지원군이 생긴 것 마냥 든든한 마음이 드는 한편, 친구 또한 매일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듣고 있노라면 눈물이 날 만큼 마음이 아프기도 분노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서로 쏟아내듯 글을 쓰고, 대화를 나누고, 질문을 하고, 화를 내고, 성찰을 하고 나니 문득 내가 대학원시절에 배운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궁금증과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지식이 있을 것만 같던 대학원에서는 어째서 우리가 하는 경험들에 대해 동료와 함께, 다른 이들과 함께 더 깊고, 복합적으로, 천천히 생각할 수 있는 법과 방향성에 대해 더 강조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하는 경험, 정확히는 우리의 위치에서-여성으로서, 교육자로서, 연구자로서, 학교 피라미드 구조의 끄트머리 즈음에 있는 직원으로서-수 많은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부당한 일들에 대해 어떻게 그것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서 한마디라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은 할 기회조차 없었을까?
미국에 오고 대학원을 가면서 뭐든지 혼자 해내는 능력과 태도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에 적응하려 애써왔다. 특히나 외국인 유학생으로 대학원을 다니면서 든 생각은, 외국인이라서 못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자는 거였다. 나 혼자서,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해내겠다고 한 다짐들이 나를 결국 지금의 나로 만들었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도 잘해요”의 이면에는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의 답도 결국은 나 혼자서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그것에서 이어지는 고립감과 외로움이 크고 깊게 존재한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이런 차별과 불공정의 경험들이 나 혼자만의 문제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 항상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하는 일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했다. 현재도 독립적으로 해내는 일들을 중점으로 평가받는 입장에서 느끼는 두려움에 가끔은 내가 선택한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인 것인지에 대한 후회도 하곤 한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삶에 새로운 언어를 들여와 내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며 왜 좀더 일찍 함께 배워가는 일의 소중함과 다정함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남들의 삶에 끼어들며 함께 배워가는 다정함을 키워 나가려고 용기를 내고 있다. 그 다정함의 기운과 위로로 조금은 덜 외롭게 더 단단하게 나와 내 사람들을 지켜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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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휴스턴대학교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