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빠른 대처·뛰어난 소통능력으로 문제해결
▶ 미주공관서 가장 빠르게 코로나 상황 업로드...‘남 돕는 일’ 행복...“새해 모두의 안전 소망”
최예경 영사
3년반 전 그가 부임한 때부터 그를 인터뷰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매번 거절했다. 2018년 파라다이스 산불로 한인들 피해가 컸던 당시 발빠른 대응에 나섰을 때도, 코로나 집단감염 진원지 ‘그랜드 프린세스호’ 한국인 2명 하선과 귀국을 이끌었을 때도, 한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출한 소녀를 공항에서 찾아내 안전하게 한국에 되돌려보낸 사건 때도 칭찬이 쏟아져도 그는 성과를 자랑하지 않고, 오히려 그 성과 뒤로 숨어버렸다.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극히 꺼렸다.
남편과 내연녀가 아내를 살해한 홀리스터 사건의 용의자들을 가장 가까이 만난 사람이기에 당시 정황과 현재 수감생활의 일상을 묻는 질문에도, 그는 말해줄 것이 없다며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까칠한 상대였고, 언제나 벽을 치는 재수없는(?) 취재원이었다.
그러나 그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전해져왔다. 자신의 성취를 알아달라고 하지 않았고, 알아줘도 무심했다. 오히려 달가워하지 않았다. 참 요상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SF총영사관의 첫 사건사고 담당 영사인 최예경 영사를 신년특집 인물로 선정한 것은 남다른 직업 사명감도 있지만 위드코로나시대에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자 함도 있다. 그리고 밤낮없이 재외국민과 한인커뮤니티의 안전을 위해 뛰는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할 몫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기도 했다.
▲최신 코로나 정보 메신저
2020년 봄 팬데믹이 우리의 일상을 뒤바꿔놓고 감염 공포가 엄습하던 때 그는 감염상황, 연방·주정부와 카운티 정부의 코로나 조치 등 최신 상황변화를 총영사관 홈페이지에 매일 공지하며 한인들의 코로나 정보 메신저가 되었다(현재는 매주). 또 팬데믹 초기인 지난해 3월 바로 카톡 오픈 채팅방(SF코로나19)을 개설 운영하며 한인들에게 코로나 최신 정보를 2년 가까이 전하고 있다.
12월초 연방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오미크론 확산 차단을 위해 미국에 입국하는 모든 항공 여행객은 비행기 탑승 전 하루 이내에 코로나19 검사 음성 판정서를 제시해야 한다고 밝히자 최 영사는 CDC 실시간 업데이트를 바로바로 공지하고, 해당자들이 궁금해 할 사항들(판정서 발급시간이 아니라 검사시간이 기준 등)을 Q&A 예시로 풀어냈다. 가장 먼저 긴급알림정보를 올리기 때문에 미주공관 영사들이 최 영사가 업로드하는 시간을 기다린다는 후문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내가 궁금한 사항을 찾아보고 정리하는 편”이라면서 “민원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공하는 공지사항을 잘 정리해놓으면 문의전화 폭주도 줄어들고, 공관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10년치 사건사고 문서 다 읽어봐
최 영사가 부임하기 전에 사건사고 업무는 민원 영사나 정무 영사가 겸임했고, 모두 부담스러워했다. 하자고 들면 끝도 없는 일인데다가 잘 해도 표시나기 어려운 일이고, 잘 못하면 된통 당할 수 있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2018년 9월 부임한 최 영사는 “2015년 관광차 온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아보고 싶어졌다”면서 “부임 후 첫해 6개월에는 새벽 3시에 퇴근하는 날도 많았지만 지금도 샌프란시스코의 햇빛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부산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한 그는 “영사라는 직보다는 사건사고 업무에 끌려 지원했다”면서 “중국어에 내 역량을 가두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자마자 10년치 사건사고 문서를 다 읽어봤다는 그는 그 문서들을 통해 사건 해결방향, 조치, 그리고 내가 놓치는 부분이 없나를 살펴보고, 연구했다고 밝혔다. 그에겐 그 문서가 참고자료 성격을 넘어 사명감을 되새기는 기운의 시간, 사건을 잘 해결하고 싶은 기도의 시간들이 되었던 것이다.
▲국도에서 전화 터지지 않을 때 가장 답답
“접수되는 다양한 사건사고 중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전화가 오는 경우가 많아요. 우선 그분들의 우려와 당혹을 가라앉히고 바로 할 수 있는 조치 등을 알려드리고 난 후 지역경찰에 사고가 접수된 게 있나 확인할 때는 마치 미저리(misery)처럼 미친듯이 전화를 돌려요. 99%는 연락 안된 가족과 별탈없이 만나게 돼요.”
사건사고 업무에서 가장 힘든 점은 미국 경찰이 국적이나 인종 정보를 좀처럼 수집하지 않기 때문에 한인인지 확인 여부가 어렵다는 점이다. 또 국도에 들어서면 셀폰이 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빨리 대처해야 할 사안에 셀폰이 연결되지 않으면 속이 타들어간다면서 혹여 중요한 전화를 놓칠지도 몰라 불안이 커진다고 말했다.
2019년 10월 19일 SF코윈 주최로 개최한 안전간담회에서 최예경 영사가 한인들에게 지진·산불, 강절도 총격사건 대처요령 등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섭 기자>
최 영사는 SF총영사관 관할지역내 30~40명 한인수감자를 면회해 그들의 처지를 살피고, 수십여차례 한인단체들과 안전간담회를 열어 지역한인들에게 지진/산불, 강절도 총격사건 대처요령, 감염예방 수칙 등을 전하고 있다. 또한 차량털이 범죄가 극심한 SF, 산호세 한인식당가를 중심으로 차량털이 피해예방 포스터를 부착하고, 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내일 그만둬도 후회없다
그런 그가 지난 봄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위장이 찢기는 고통에 구역질, 어지럼증이 겹쳐 바닥에 쓰러지고 응급실에 실려가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신의 업무에 온힘을 쏟아낸 결과였다. 결국 외교본부의 허가를 얻어 한달간 한국에 나가 치료를 받았다. 지금도 100%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몸을 사리지 않는다.
“가끔씩 민원인들로부터 폭언을 듣기도 한다”며 “이 말은 내가 민원인 때문에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민원서비스를 하는 사람들도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아주시길 바란다는 뜻”이라고 나직하게 말했다.
대학 4년간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공부해 다시는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그는 “내가 뭘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삶의 보람을 느끼는가를 엎치락뒤치락 오랜시간 생각하다가 남에게 도움을 줄 때란 것을 알게 돼 사건사고 영사직에 지원했다”면서 “내일 그만둬도 후회없을 만큼 매일 성실히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새해 모든 사람이 안전하길 바란다”면서 “사건사고는 한순간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에 내가족 보호를 위해서라도 안전 매뉴얼대로 준비, 대비하고 주변분들과 본인이 겪은 작은 사건사고라도 정보를 나눠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지만, 노력하면 피해는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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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