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 프린스와 캐럴 파일이 공동 저술한 책 ‘자선의 7가지 얼굴’(The Seven Faces of Philanthropy)을 보면 사례 분석을 통해 추린 자선의 유형들이 나온다. 가장 많은 것은 공동체형(28%, 선행은 합당한 일)과 신앙형(21%, 선행은 신의 뜻) 그리고 투자형(15%, 선행은 좋은 비즈니스)이다. 이밖에도 “재미가 있어서” “옳은 일을 한다는 느낌 때문에” “가문의 전통이기 때문에” 등 다양한 동기들이 작용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덕이 순환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은 역경에 처했을 때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할 뿐 아니라, 삶이 윤택할 때도 자신이 도움을 줘야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식량과 생명이 되고 또 용기와 희망이 된다면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기부는 똑같이 소중한 것이며 ‘받는 사람’ ‘주는 사람’ 모두를 도와주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한 한인 사업가는 매일 아침 한국어 신문과 미국 신문을 정독한다. 그는 자신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신문을 꼼꼼히 읽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들려준다. 사업가로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신문 기사들을 통해 자신의 잠재적 고객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신문을 열심히 읽는 마지막 이유는 도움의 손길을 줘야 할 사람들이 없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그는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이나 사연이 눈에 띄면 몇 가지 기본 사실들을 확인한 후 곧장 개인수표를 끊어서 보낸다.
팬데믹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됐는데도 제대로 된 컴퓨터가 없어 배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가주 농장일꾼 가정의 아이들에서부터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된 자신의 학생을 입양한 미국인 교사, 그리고 위안부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는 한인 영화학도와 노숙자 사역 중인 한인 목사 등 그가 끊는 수표의 수취인은 한인과 미국인을 가리지 않는다. 최근에는 한국전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미군노병들이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매년 한 차례씩 모임을 갖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을 대접하고 싶다며 상당액의 후원금을 보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가 이런 방식으로 도움을 준 사람들과 단체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하지만 한 번도 스스로 이것을 언론에 드러낸 적이 없다. 극소수의 주위 사람들만 알고 있을 뿐이다.
팬데믹이 기승을 부린 지난해 미국인들이 기부한 돈의 총액은 4,710억 달러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2019년의 4,480억 달러에 비해 3.8%나 늘어났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가운데 오히려 인간애가 더욱 활짝 꽃을 피운 것이다. 기부자의 절대 다수는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 온정의 손길을 건넨 보통사람들이다.
하지만 부의 편중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로운 사람들의 기부와 나눔이 한층 더 절실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고전에서는 베풀지 않는 자의 부유함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런 생각은 ‘어질 현(賢)’자 속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이것은 ‘어질다’는 뜻의 본래 글자였던 ‘현( )’자에다 ‘조개 패(貝)’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고대사회에서는 조개가 화폐로 사용됐다. 그래서 조개는 재화 혹은 재물을 상징한다. ‘현(賢)‘자는 많은 재물을 갖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구휼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진 행위임을 표현하는 글자이다.
세상에는 ‘부자’라는 명성을 얻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현자’라는 명예를 얻은 사람들은 별로 없다. 더구나 ‘부자’라는 명성에다 ‘현자’라는 명예까지 얻은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쪼록 2022년 임인년 새해에는 ‘현명한 부자’ 소리를 듣는 한인들을 좀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