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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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니먼 마커스 백화점 앞에서

2021-12-27 (월) 김정원 / 구세군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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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지방에서 주최하는 구세군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와 내년 2022년도 청소년 캠프를 계획하고 보고하느라 저와 제 남편은 12월을 바쁘게 보내고 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한 교회의 담임 사관으로 자선냄비 자원봉사자들을 찾으러 애타게 고군분투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구세군은 비영리 기독교 단체이기 때문에 지역 센터 직원들과 주중의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2월, 이 한 달 동안의 자선냄비 모금과 행사 후원금들이 큰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구세군 모든 사관님들이 12월 한 달간 쉬는 날 없이 일하십니다.

그렇기에 크리스마스가 가까이 다가오는 이때쯤 토요일은 저의 온 가족이 자선냄비 자원봉사를 나갑니다. 이번에는 저희 막내아들이 기침으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남은 가족은 각기 전투로 흩어져서 자선냄비 장소에 포진하였습니다.


저와 제 큰 딸이 맡은 곳은 샌프란시스코 중심에 있는 유니온 스퀘어 옆의 니먼 마커스(Neiman Marcus)라는 백화점 정문 앞이었습니다. 보통 월그린이나 식료품점 앞에서 자선냄비를 해왔기 때문에 제 딸과 저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이곳저곳에서 온 관광객들, 그리고 멋지게 차려입은 쇼핑객들 사이에서 들뜬 마음과 기대감으로 종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쌀쌀한 반응에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은 많았고 그들 중 대부분은 보통 길에서 마주치지 못했던 종류의 부유함으로 휘어감은 이들이었지만 참으로 모금통 앞에서는 냉담한 반응이었습니다.

급기야 제 딸아이는 한 시간 가량 종을 치더니 저에게 다가와 이렇게 귀에 속삭였습니다. “엄마, 쇼핑에는 돈을 많이 쓰는데 여기에 one penny도 안 넣네.” 미국에서 가장 비싼 백화점 앞에서 저와 제 딸은 서있었지만 그 어떤 자선냄비 장소에서 보지 못했던 초라한 모금액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저의 지난 30년 자선냄비 봉사경력에 비추어볼 때 신기하게도 섬김의 손길은 거의 대부분 빠듯한 삶의 현장 속 짬을 내 식료품점을 들르는 서민들의 낡은 지갑 속에서 나오지, 값비싼 명품 지갑 속에서나 화려한 쇼핑 거리에서 나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마치 성탄절의 주연배우이신 예수님이 화려한 로마의 궁전 대신 초라한 마구간을 선택했던 것처럼 지역사회를 돕게 될 온정의 손길은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 장소에서 지금도 꾸준히 채워지고 있습니다.

<김정원 / 구세군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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