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을 통한 삶의 확인을 연민의 마음으로 그린‘불후의 명작’

2021-12-24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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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통한 삶의 확인을 연민의 마음으로 그린‘불후의 명작’

와타나베가 죽기 얼마 전 눈 내리는 밤 공원에서“인생은 짧은 것”이라고 노래 부르면서 그네를 타고 있다.

세계적인 거장 아키라 구로사와가 1952년에 만든 죽음을 통한 삶의 확인을 연민의 마음으로 그린 불후의 흑백 명작이다. 홀아비로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사는 와타나베 간지(구로사와의 단골 배우 시무라 타카시)는 30년간을 서류더미 속에 파묻혀 살아온 도쿄 달동네 구청의 시민과장. 이런 와타나베가 의사로부터 위암으로 6개월 시한부 삶의 선고를 받고 사람다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모기가 들끓는 동네 시궁창을 덮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짓기로 한다.

그런데 와타나베는 놀이터 건설에 앞서 허름한 술집에서 만난 2류 작가의 안내로 밤의 유흥가를 섭렵한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이 작가와 들른 클럽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인생은 짧은 것”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이 때 까지만 해도 자기 미래에 대한 확실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던 와타나베는 자신의 젊은 부하 여직원 오다기리 토요를 만나면서 비로소 생명력의 원천을 발견하게 된다. 와타나베는 오다기리와 함께 빠찡꼬장과 아이스스케이트장 및 요리집과 극장엘 들르면서 여인의 젊음을 동경하고 또 희열한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경직된 관료체제에 막혀 손도 대지 못했던 놀이터 건설에 집요하게 매달린다.

이렇게 삶의 목표를 찾은 와타나베는 그제야 평소 느끼지 못하던 자연의 아름다움마저 깨닫는다. 와타나베는 어느 날 석양을 바라보면서 “아, 참 아름답구나. 난 30년간 황혼을 보지 못 했어”라고 찬탄한다. 그리고 와타나베는 6개월의 삶을 충분하고 평화롭게 마감한다. 그가 죽기 얼마 전 눈 내리는 밤에 완공이 가까운 놀이터의 그네를 타면서 “인생은 짧은 것”을 부르는 모습에서 후회없이 만족하게 산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영화의 전반부는 와타나베의 고리타분한 일상을 그렸고 후반부에서는 와타나베의 장례식에 참석한 구청의 조문객들이 와타나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의 변신의 원인을 자기들 마음대로 추측한다. 죽음에 맞선 삶의 긍정에 관한 영화에서 뛰어난 것은 시무라 타카시의 연기. 와타나베의 변신을 감지하기 어렵도록 심오하게 표현하는데 그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야 말로 진짜 사람의 얼굴이라고 하겠다. 이 영화는 와타나베의 숨 막힐 것 같은 무기력한 삶으로부터 역동적 인간에로의 변신을 우수와 비감 속에 생명 찬가한 걸작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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