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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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등(無盡燈)] 추수감사절

2021-11-25 (목)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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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4번째의 땡스기빙데이 이다. 미국생활 초창기 때, 이 날이 휴일이고 온 국민이 며칠 논다는 것을 미처 몰라서, 한국서 온 손님을 데리고 식당에 갔다가 난감했었던 기억이 있다. '감사해야 하는 날이면 그동안 식당 찾아준 이들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더 문을 열고 베풀어야 되는 거 아니어요?' 동행이 투덜거려서, 돌아오는 내내 감사해야할 대상에 대해, 오래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미국의 땡스기빙데이는, 17세기 영국 국교도의 박해를 피해 신대륙에 건너온 청교도들이, 낯선 환경 속에서 역경을 딛고, 첫 수확을 거든 것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낯설고 척박한 환경속에서 모진 풍파와 세월을 이겨내고, 첫 수확을 했을 때의 그 감사함이란, 필설로 형언이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신뿐이었겠는가. 부는 바람, 벌레 하나에게도 감사했을 것이다. 그 순정의 마음이 네이티브 아메리칸에게도 통해서, 함께 음식과 정을 나누고, 서로에게 감사하는 축제의 날로 민들었을 것이다. 그 나눌 수 있는 먹거리가 너무 좋아서, 해마다 수확철이 돌아오면, 양식을 준 신에게 감사하고, 배고픈 이와 음식을 나누게 되는 일이 오래 이어져, 전통이 되고, 문화가 되고, 공휴일로까지 제정되게 되었을 것이다. 먹을 양식을 걱정 안한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정말 평화로운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굶주려본 이는 그것을 잘 알겠지만, 경험이 없는 이도, 세상에 만약 먹거리가 없어진다고 생각해보면 끔찍할 것이다. 컴퓨터를 씹어먹을 순 없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먹거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먹는 것이 바로 몸이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음식 앞에서 경건히 감사기도를 한다. 불가에선 공양 전에, 함께 '공양게'를 한다. //'이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가/ 덕행이 부족한 나로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하고서 공양을 한다. 쌀 한 톨도 바람과 벌레와 공기와 물과 흙과 땀과 피와 농부와...수많은 인연들의 노고와 희생이 없이, 내 앞에 놓일 수 있겠는가. 그걸 생각하면, '덕행이 부족한 나로서는 받기가 부끄럽네' 부분에선 번번이 예나 지금이나 목이 메이곤 한다. 먹거리 자체와 먹거리를 만든 이, 먹거리가 되게 운반한 이...그 인연 모두가 신이고, 그 모두가 부처이고 그렇다. 그것을 함부로 한다는 건, 누가 봐도 옳지 않다. 돈으로 산다 해도, 그 돈 또한 온전히 내것이 아니며, 있다고 언제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귀중한 것을 어떻게 먹고, 그 에너지를 어떻게 써야 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때마다의 감사기도로 그 감사한 대상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이지만, 그 감사함을 되돌려주는 것, 회향, 이야말로 땡스기빙데이의 진정한 의미가 아닌가 한다. 실질적인 나눔 이전에, 작금의 너무 많이 사고,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낭비하는 것만 각자가 조금씩만 줄여도, 갖지 못한, 부족한 이를 돕는 일이 아닐까 한다. 한쪽이 과하면 한쪽은 당연히 결핍이 있기 마련이니까. 유기적으로나, 인연법으로나, 생각해보면, 낭비는 자기 자신과 남을, 함부로 쓰고 버리는 것이나 진배없다. 만약 세상 모든 것이 내 몸인 줄 안다면. 하나임을 안다면, 뭐든 소홀히 하진 못할 것이다. 숨을 내 쉬어야다시 들이쉴 수 있는, 아주 당연해보이지만 엄중한 이 철칙은, 뭐든 베풀고, 내보내야, 내게 돌아오고 가질 수 있다는, 삶의 원초이고 증명이다. 만약 당신의 인생에 감사할 일이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감사할 일과 인연을 맺지 않아 그렇다. 즉, 감사받을 일을 내보내지도, 감사받을 일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살고 있단 얘기다. 요즘은 명절도 남이나 우리나 그저 이름뿐이고, 노는 날로 여기는 모양새이지만, 미국의 땡스기빙데이엔 형식적으로나마 서로 나누고 회향하고, 가족들이 리유니온하고, 사랑을 주고 받는 날인것 같아, 그 감사 대상이 누구든, 무엇이든, 감사할 수 있는 날이 법으로라도 정해져 있는 것이 문득 감사하다. 적어도 감사함,을 되새기는 인연처가 되어주니까 말이다.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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