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000m 봉우리 영남알프스…올해 3만 명이나 완등한 이유

2021-11-19 (금) 울주=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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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박자박 소웁탐방 - 울주 언양읍 영남알프스와 반구천

해발 900m 영남알프스 간월재의 억새평원. 억새 꽃은 거의 떨어진 상태지만 불어오는 바람만큼 좌우로 펼쳐지는 풍광이 시원하다.

높은 산이 울타리를 두르고 있는 곳, 울산 울주군이다. 울주에서도 서쪽 언양읍은 고려 인종 때(1143년)부터 독립된 현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울산에 편입됐다. 읍내 한가운데에 언양읍성이 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평지에 정사각형으로 쌓은 성이다. 삼국시대부터 토성이 있었고, 조선 연산군 때(1500년)에 돌로 쌓았다고 전해진다. 세월이 흘러 허물어지고 훼손됐지만 근래에 남문을 복원했고, 현재 내부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읍내에서 서쪽으로 보면 높은 산줄기가 또 성벽처럼 둘러져 있다.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으로 연결된 산줄기는 언젠가부터 영남알프스로 불린다. 높을 뿐만 아니라 경관도 빼어나다. 공업 도시 울산의 산소 울타리다.

■바람처럼 시원한 풍광, 간월재가 억새평원이 된 사연


간월재(900m)는 언양에서 밀양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빠른 길이라고 하지만 이용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을 정도로 높고 험하다. 상북면의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출발하면 가파른 오르막으로 표고 700m를 극복해야 한다. 안내판에는 1시간 50분을 제시하고 있는데, 어디까지나 산을 잘 타는 사람 기준이다. 3㎞ 남짓한 거리지만 3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현재 산자락 아래는 가을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어 아쉽지 않을 만큼 단풍을 즐길 수 있다.

달을 보는 고갯마루, 간월재는 사찰 이름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복합웰컴센터 아래에 간월사 터가 있다. 전각은 모두 사라지고 1979년 세운 불당 안에 간월사지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울산지역에서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불상이다. 받침대와 광배는 없어졌지만, 전체 형태는 잘 보존된 편이다. 금당 터 좌우에는 2기의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온천단지 아래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작괘천은 예부터 언양 주민들의 휴식처였다. 오랜 세월 물살에 닳아 움푹움푹 파인 바위 형상이 마치 술잔을 걸어 둔 것과 같다고 하여 작괘천(酌掛川)이라 불렀다. 백옥처럼 희고 반질반질한 바위가 넓게 분포하고 있는 곳에 작천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고려 충신 정몽주가 글을 읽던 자리이자 언양 지방 3·1운동의 중심지였다.

간월재 북쪽 배내고개에서 출발하면 등억온천에서 오르는 것보다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해발 600m 부근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고갯마루에서 바로 치고 올라 산등성이로 걷는 길과 바로 아래 사슴농장에서 임도를 따라 걷는 코스가 있다.

제대로 등산을 즐기려는 이들은 산등성이 길을 선택하지만, 대개는 경사가 완만한 임도를 따라 걷는다. 간월재까지 약 6㎞로 꽤 먼 거리지만 영남알프스의 장엄한 산줄기를 두루 살필 수 있는 코스다. 지금은 단풍이 짙어가는 계곡 아래의 늦가을 정취와 갈색으로 변해가는 능선 부근의 초겨울 풍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영남알프스 9봉 중 간월산(1,069m)과 신불산(1,159m)을 비교적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는 것도 이 길의 장점이다. 영남알프스 9봉은 두 봉우리 외에 가장 높은 가지산(1,241m)을 비롯해 운문산(1,188m), 천황산(1,189m), 재약산(1,108m), 영축산(1,081m), 고헌산(1,034m), 문복산(1,015m)을 일컫는다. 울주군과 경남의 밀양 양산, 경북의 청도 경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데도 도전하는 이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걸어보면 그 매력이 짐작된다. 임도를 따라 굽이굽이 돌며 천천히 오르다 보면 우락부락한 근육질 산줄기가 자못 이국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그럼에도 악산은 아니다. 높은데 위압적이지 않고, 단단하지만 부드럽다. 간월산과 신불산 사이 간월재에 닿으면 드넓은 억새평원이 펼쳐진다. 산등성이를 넘는 거센 바람에 억새 꽃(열매)은 거의 떨어졌지만 파도처럼 일렁거리는 은회색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간월재 억새평원은 사실 자연의 산물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스키장을 건설하기 위해 산꼭대기의 나무를 모두 베어낸 게 시발점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만큼 눈이 내리지 않아 스키장은 무산됐다고 한다. 이후 인삼재배 단지와 목장으로 개발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고, 영화 촬영세트를 지으려는 계획도 끝내 무산됐다. 결국 산등성이 빈 공간을 차지한 건 생명력 강한 억새였다. 영남알프스 억새 평원은 재약산 사자평고원이 가장 넓고, 간월재에서 신불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4㎞ 구간 산 능선에도 넓게 분포하고 있다.

■반구대암각화 보러, 선사시대로 가는 명품 숲길

언양읍 북측 대곡천은 선사시대 유적인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울산암각화박물관에서 계곡을 따라 상류 약 1㎞ 거리에 천전리각석, 하류 약 1.2㎞ 거리에 반구대암각화가 있다. 계곡을 따라 걷는 아늑한 숲길이 탐방객을 선사시대로 안내한다.

문화재청은 ‘울주 반구천 일원’을 지난 4월 명승으로 지정했다. 반구천은 조선시대에 대곡천을 부르던 명칭이다. 절벽과 협곡, 물길과 습지 등이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 경관에 역사 유적이 더해 복합문화경관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탐방로는 반구천 물길을 따라 산자락을 휘휘 돌아간다. 반구대(盤龜臺)는 거북이 엎드려 있는 모양의 바위를 일컫는다. 초입에 반구서원이 있고, 바로 앞 계곡에 바위 절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 모습이 거북 같아 반구대라는 이름이 붙었고, 정몽주가 유배 중 머물렀던 곳이라 해서 포은대라고도 부른다. 명확히 고증되지는 않았지만 겸재 정선(1676~1759)이 ‘공회첩(孔懷帖)’에 남긴 반구 그림 역시 이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루 단 한 번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림의 윤곽이 가장 또렷하게 보이는 매일 오후 2시 30분, 암각화박물관에서 진행하는 답사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된다. 전화(052-229-4795)로 하루 15명 안팎으로 예약을 받고, 인원이 차지 않을 경우 현장 신청을 받는다.

반구대암각화는 너비 8m, 높이 4m 수직 절벽에 새겨져 있다. 거북 호랑이 사슴 등 다양한 동물그림이 있지만 고래가 대표적이다. 고래사냥에 나선 배와 어부는 물론, 새끼를 등에 업은 귀신고래, 물 위로 뛰어오르는 혹등고래 등 그 종류를 고증할 수 있을 만큼 표현이 세밀하다. 고래 도시 울산의 상징적인 그림이다.

반구천 계곡에는 공룡 발자국도 여러 군데 남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미스터리로 가득한 선사시대 유물은 말할 것도 없다. 암각화박물관에서 미리 설명을 들으면 좀 더 깊이 있게 탐방을 즐길 수 있다.

<울주=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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