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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칼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2021-11-18 (목) 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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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만든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대한 전 세계적인 뜨거운 열기가 가히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음악, 화장품, 영화에 이어 드라마까지 K-문화의 위대함이 인정받는 것 같아 미국 땅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호기심에 찾아본 ‘오징어 게임’은 솔직히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어릴적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아직도 아름답게 남아 있는 놀이가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도구가 되다니!

첫 게임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입니다. 술래에게 움직임이 들키면 술래가 되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저 멀리 저격수들이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술래가 된 사람들을 총으로 쏘아 죽입니다. 제 평생에 많은 영화를 보았지만, 이 장면만큼 충격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적 추억들이 도살당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감독은 빈부차이가 심화되는 사회의 불공정함과 ‘갑을’의 갈등이 아니라 약자들인 ‘을’들의 생존경쟁을 다루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렇더라도 이 드라마는 단순히 재미로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니라 몇 가지 심각한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져주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존재하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자유의지는 성경에서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치를 가지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에게 어떤 책임도 물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은 인간 자유의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던져줍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서 전체 456명 중에 255명이나 죽임을 당합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당연히 공포를 느꼈고 게임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 투표를 합니다. 결과는 101대 100, 단 한표 차이로 게임을 중단하기로 하고 각자 흩어집니다. 오징어 게임은 강제가 아니라 본인이 자원해서 참여하고 참석자들의 절반이 원하면 멈출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삶이 고달픈 참가자들은 다시 스스로 죽음의 게임에 참가합니다. 순전히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입니다. 그들 중에 단 한 명만이 살아남을 때까지 죽음의 게임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 심각한 질문이 남습니다. 생존확률 200분의 1의 무서운 현실 앞에서도 왜 그들은 죽음의 자리에 제발로 찾아왔을까요? 그 선택을 인간의 자유의지로 포장할 수가 있을까요? 드라마는 이 부분을 심각하게 묻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과연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 인간의 선택에 대해서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을 심각하게 남깁니다.

둘째, 인간에게 과연 선함이 존재하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삶과 죽음의 살벌한 상황에서 그래도 인간적인 품위를 지키고 약자를 보호하던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위기에 몰리자 한 명은 치매 걸린 할아버지를 속여서 구슬을 빼앗아 할아버지를 죽게 만들고, 한 명은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파키스탄 노동자를 속여서 대신 죽게 만듭니다. 인간에게 애초에 선한 마음이란 것이 있는가를 그 드라마가 묻고 있습니다.

셋째, 기독교 신앙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감독이 어린 시절 교회에서 상처를 받은 아픔이 있는지 모르지만 ‘오징어 게임’은 상당히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가 아내를 죽이고, 딸에게 성추행을 한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탐욕스러운 그 죽음의 게임에 참여한 한 교인이 남들을 죽이더라도 자신은 살아남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들먹이는 광신도적인 모습은 현대 교회에 심각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사회의 진정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는가?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들어도 친구들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던 그 순수함을 모든분들이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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