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동네산책길에 생소한 구조물이 눈에 띄었다. 길모퉁이 나뭇등걸에 놓인 트리하우스 모양의 궤짝이었다. 유리창 위에 ‘작은 무료 도서관(Little Free Library)’이라는 문패가 붙어 있고 그 안에 소설책, 동화책, 요리책, 신앙서적 등 다양한 도서 50여권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어떤 호사가가 집에 있던 묵은 책들을 이웃주민을 위해 희사한 듯싶어 흐뭇했다.
그 후 근처 공원에서도 같은 문패의 미니 도서관을 만났다. 가로수 곁에 세워진 유리창 달린 책꽂이였다. 알고 보니 ‘작은 무료 도서관(LFL)’은 미국 50개주는 물론 지구촌 100여개국(심지어 남극까지)에 10만여개의 지점(?)을 둔 당당한 비영리단체였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다 쉽게 책을 보급한다”는 것이 LFL의 캐치프레이즈다. 위스콘신 주 허드슨에 본부가 있다.
창설자 토드 볼은 교사였던 독서광 모친을 기리기 위해 2009년 집 앞 잔디밭에 학교 모양의 작은 상자를 설치하고 공짜 책을 비치하는 것으로 풀뿌리 독서 캠페인을 시작했다. 볼의 목표는 궤짝을 2,510개 만들어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전국 대도시에 설립한 도서관 건물수를 앞지르는 것이었다. 그는 2018년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91개국에 9만여개를 보급했다.
도서 상자는 ‘청지기’로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이 만들어 주민들이 원하는 곳에 설치해주고 관리해준다. 누구나 책을 꺼내갈 수 있고 반납여부는 자유다. 반대로 자기 책을 넣을 수도 있다. 365일, 24시간 오픈이어서 정규 도서관보다 편리하다. LFL을 본 땄는지 한국에도 전철역이나 시골 버스정류장 등에 미니 길거리 도서관이 등장했다고 들었다. 바람직한 트렌드이다.
한국에선 예부터 가을이 등화가친의 계절로 불렸지만 요즘은 단풍가친의 행락계절로 불려야 더 어울릴 듯하다. 밤이 길고 ‘방콕’하는 날이 많은 겨울이 더 독서의 계절답다. 독서이지 ‘독책’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책을 읽는다”고 하지 않고 “글을 읽는다”고 했다. 그래선지 인터넷강국을 이룬 후손들은 요즘 남녀노소 모두 책이 아닌 핸드폰을 들고 글을 읽는다.
미국인들엔 ‘염천가친’이 어울린다. 바캉스를 떠날 때 꼭 책을 몇 권 챙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e북(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을 연간 수십권 읽고 그 중 대여섯권을 ‘여름에 읽기 좋은 책’으로 추천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바캉스용 책을 추천했었다. 토크쇼 여제 윈프리 오프라의 북클럽이 다룬 책들은 계절과 관계없이 즉각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지만 미국도 세태변화를 피할 수는 없다. 이미 5년전 미국에서 팔린 모든 책 중 e북이 18%를 점유했다. 그해 중국은 28%, 브라질은 55%의 e북 판매율을 기록했다. 책이 아닌 신문도 사정은 매한가지다. 미국 최대일간지인 월스트릿 저널은 그해 전자신문판 구독자가 23% 늘어났다. 권위의 뉴욕타임스는 47%나 뛰었다. 반대로 종이신문 구독자는 곤두박질했다.
한국의 e북 판매비율은 지난해 80%를 넘었다. 단연 세계 1위다. 남녀노소 모두 전자기기의 달인이다. 하지만 글을 읽는 총 시간은 주당 평균 3시간6분으로 세계 30대 우수 독서국민 중 꼴찌였다. 같은 아시아국들인 인도(10시간42분), 태국(9시간24분), 중국(8시간), 필리핀(7시간36분)이 선두그룹을 형성했다. 미국(5시간42분)도 한국처럼 하위그룹(22위)에 끼었다.
코로나 팬데믹 동안 억지 ‘집콕’ 덕분에 책 읽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도서관은 한동안 폐쇄됐었다. 그래서 LFL이 더 빛을 발했다. 200여 가호의 우리 동네는 통행인이 적은데도 LFL이 성업을 구가하더니 올가을 궤짝이 하나 더 추가됐다. 문패도, 유리창도 없지만 조명이 딸린 작은 찬장이다. 호사가 주민의 선물인 듯 내용물이 거의 모두 페이퍼백으로 채워졌다.
LA 코리아타운에는 LFL이 없다고 들었다(올림픽경찰서 안에 하나 있다). 한글 책으로 채워진 산뜻한 청기와 궤짝이 올림픽 길에도, 윌셔 길에도, 웨스턴 길에도 세워져야 한다. SNS에 허구한 날 홍수를 이루는 ‘좋은 글’들은 대개 그 밥에 그 나물이다. 이런 글을 읽고 식상해 하는 노인들과 우두커니 가게를 지키는 업주들에겐 영혼을 살찌우는 ‘좋은 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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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