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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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통신] 시월 상달 ‘문화의 달’을 기리며

2021-10-07 (목) 진월 스님 (리버모어 고성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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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양력으로 10월, 음력으로 구월을 맞았습니다. 예로부터 양력과 음력을 막론하고 이달은 모두 만추(晩秋)나 모추(暮秋) 즉, 늦가을이나 저무는 가을로 불리며, 추운 겨울 앞의 마지막 좋은 시절로서 ‘상달’이라 불러왔습니다. 우아한 국화의 향기가 번지고 단풍이 아름다운 이즈음, 한국에서는 이달을 “문화의 달”로 삼아 다양한 문화행사를 펼치고 있지요. 그 가운데 특히 역사적으로 뜻깊은 ‘개천절’ 즉, 겨레의 하늘이 열린 날로서 “고요한 아침”으로 상징되는 우리 고대국가의 시원으로 여기고, ‘한글날’을 근대 한국문화 창달의 계기로 삼아, 각각 10월 3일과 9일을 국경일로 봉축해오고 있습니다. 산승은 지난주에 샌프란시스코주재 대한민국총영사관 주최의 개천절을 즈음한 “한복패션쇼”와 리셉션에 참석하여, 동포는 물론 현지의 다국적 외국인들과 한국의 전통 및 문화를 즐기고 우의를 다지는 기회를 가졌으며, 이어서 본 개천절 아침에는 조국을 방문하여 단군 할아버님을 그리며 고향의 정취를 누리면서 모레의 한글날을 기리고자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소식과 소회를 나누고자 합니다.

산승은 작년 봄에 코비드-19 팬데믹이 창궐하자 정부의 방역정책 시행 차원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재택명령’의 집행으로, 대다수 시민들이 본의 아니게 집 안에 머물며 안거생활 시작에 들어가게 되는 무렵부터 폐이스북을 통한 에스엔에스 온라인 네트워크로 ‘법공양’ 즉, 진리의 말씀을 제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읽고 외우며 생각하고 실천하기 좋도록, 하루에 한 구절씩 한글과 한문 및 영문으로 <법구경 法句經 Dhammapada>, 전체 423구 모두를 노래나 시의 구절 형식으로 번역하고 사이버 누리에 올리며 해설하는 정신적 불사를 지난여름에 마칠 수 있었지요. 그 결과를 오프라인 대중을 위하여 인쇄 출판할 필요도 느꼈었고, 이번 한글날을 맞이하며 발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수많은 번역본이 발행 유통되고 있는 마당에 왜 또다시 그런 시도를 하게 되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 특징의 하나로서, 본래 경의 취지대로 한글의 노래가락 형식의 채택을 들 수 있겠습니다. 기존 한글의 책들은 거의 다 “진리의 말씀”이라는 내용의 뜻을 전하는 데에 집중하였다고 보고, 산승은 “깨침의 노래”로서의 운취를 느끼도록 만들어서 외거나 부르기 좋게 정형시(3-4-5조)의 틀을 활용하고자 하였지요. 한글을 만드시고 그 용례를 보이고자 ‘달이 천 강에 비치는 노래 月印千江之曲’를 지으셨던 세종 임금님의 선례를 본받아, 진리의 말씀을 노래처럼 부르도록 창안하고자 한 것입니다. 인도불교 중흥을 발원하며, 조계종단의 인도 붓다가야 분황사 불사를 위임받아 진행하고 있는, 사티아라마 사티스쿨의 도서출판기관인 “사티 SATI”에서 출판한 이 책은, 한글날인 이번 주말 직전 세상에 선보이게 됩니다.

알려져 있듯이, <금강경>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인 경을 “쓰고 지니며 읽고 외우면서 남을 위해 설명함 書寫受持讀誦爲他人說” 의 공덕이 헤아릴 수 없이 큼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전체의 분량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오직 중요한 몇 구절만이라도 시도해 보기를 권하고 있지요. 수많은 불경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간결한 것으로 알려진 <법구경>을, 늘 지니며 읽고 외우며 노래하고 이웃과 나눈다면, 그 공덕은 물론, 진리와 지혜 및 영감을 얻는 기쁨과 보람이 클 줄 압니다. 이 경의 몇 구절만이라도 보고 외우며 기억하고 실천하면서, 각자 나름대로의 명상 수행과 살림살이의 지침 및 안내서로서 삼는다면, 그 결과는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깨침과 행복의 체험이 따를 것입니다. 우리 겨레뿐만 아니라,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한글을 기리는 날을 즈음하여, 한글의 노래로 나투어진 “깨침의 노래” <법구경>을 영성의 벗님들에게 삼가 올리며, 그 뜻은 물론 한글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누리시길 빕니다. 문화가 빛나는 시월 상달을 새삼 기리며, 특히 진리와 행복을 실어 나르는 한글 만세를 불러보면서...

<진월 스님 (리버모어 고성선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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