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21 문예공모 시 부문 당선작] 이사

2021-08-19 (목) 12:00:00 황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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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문예공모 시 부문 당선작] 이사

황미영

Let me go
단출한 말 꺼낸 지도 한참
그 사람 이사한다

육신 무게를 줄이느라
달포나 기다린 차례에 이어
마스크 이미 소용없는 이삿날마저
거듭 달포를 기다렸다

피울만한 봄꽃은 다 피운
봄처럼 떠난다


꾸린 이삿짐이라야
200 큐빅 인치 상자, 단 하나

배웅이 피운
한아름 프리지아가
싱싱하다

Let me go
한마디 말 있음으로부터
아무런 말 없음으로 끝맺은 한낮 적막,
프리지아 향기로 싸매 주었다

잠깐잠깐 오가다
프리지아를 좋아했다는 내 말
얼핏 들었는지
마침맞게 향기 들추는 바람

사진 속 팔짱 끼고 선 그 사람
가뿐하게 웃고 있다

당선 소감 황미영

우선 감사 인사부터 드립니다. 문학이 인간 본연의 정신을 다룬다는 것, 문학과 삶의 접점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더불어 삶에 대한 태도를 새로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시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시가 저와의 거리두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어 다가가면 다시 그만큼 물러나곤 합니다. 문학은 삶의 현실 법칙을 떠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지난 1월, 제 개인적으로 겪고 체험한 상황에서 있는 그대로를 써 본 글이었습니다. 저와의 대화였고 아직도 내면적 힘듦이 진을 치고 있는 중에 치유를 탐색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별을 이별로만, 슬픔을 슬픔으로만 쟁여놓을 수 없어서 아름다운 곳으로의 ‘이사’를 축원해주고 조용히 도와야 했습니다. 다시 한번 졸시를 챙겨 주시고 격려해 주신 나태주, 한혜영 심사위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또한 시와의 거리를 좁혀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미주 한국일보에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황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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