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무기를 뿌린 것 같은 6월, 친구들과 우리 집 루프탑에서 와인을 마셨다. 얼굴이 습기에 눌린 저녁 여덟 시에 친구가 남쪽 하늘을 가리켰다. 남산 위에 뜬 달은 주황과 분홍이 섞여‘맥베스’에 나오는 것 같은 불길한 아름다움으로 소요하고 있었다. 와인이 담긴 잔을 돌리는데 무리 지어 서로의 주위를 회전하는 은하가 산산조각 나는 상상이 들었다. 수십억, 수백만, 수주, 수일 동안 누리던 휴일이 갑자기 끝나는 상상을.
저 달은, 수학이 제안했고 그래서 존재해야만 했던 방정식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을까? 허공에서 달이 갑자기 사라져도 달의 입자는 남아 있을까? 중력이 제로인 곳에서 샴페인 거품은 어떻게 될까? 실망한 달빛이 회전하는 검처럼 시간을 가를 때 친구들은 총총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사람들은 어제 그 달이 스트로베리 문이었다고 떠들었다. 그러고 보니 주위의 360도 전부가 스타워즈로 둘러싸여 있었다.
어느 날은 친구들끼리 (시대의 교사가 된) 유튜브를 서로 들여다보았다. 클래식과 주식을 오가며 좌뇌와 우뇌의 균형을 자랑하는 친구, 시사와 부동산을 섭렵하며 준전문가가 된 친구도 있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카르마와 근사체험(近死體驗)을 훑는 친구는 다른 차원을 엿보며 교주 되기 직전의 기세를 내뿜었다. 신념을 유지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친구들은 이 막막한 시절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내 관심사는 별로 유용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지식은 미래를 여는 대신 현재를 닫을 것이다. 나는 폐에 산소를 불어 넣듯 인연 따라 생겼다가 인연이 끝나면 사라지는 세상에 집착을 버리라는 젊은 스님의 낭랑한 채널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 탓에 소원해진 관계가 애절하지 않은 걸까.
별개로 우주 물리학을 흘낏대는 사이 베텔기우스(오리온 자리의 알파별)와 알데바란(황소자리의 적색 거성)이 파란색인지 빨간색인지 알았다. 우주 속 우리 위치에 대해 신나는 통찰을 주는 암흑 물질 개념에 대해서도 들었다. 어떤 클립은 그 뒤에 어두운 천구를 숨긴 채 나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내 안에서 발견하고 싶은 천체물리학적 재능은 없었지만.
그런데 얼마 전에 과학적 진실 하나가 바뀌었다. 우주의 크기가 146억 광년이 아니라 930억 광년이며, 은하의 수도 4,000억 개가 아니라 1조 개로 늘어났다니. 무한의 은하가 우주 속에선 그저 1조 분의 1인 참가자에 불과했다니. 나는 그렇게 똑똑한 척하다가 완전히 꺾여버렸다.
다른 채널에선 어떤 러시아의 과학자가 한 세기 전의 도서관 사서이자 철학자의 저술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방 벽에는 은하와 성운들의 사진이 가득 붙어 있었다. 방구석엔 일회용 컵과 믹스 커피도 보였다. 그는 기존 이론을 훑지 않았다. 그랬다면 우주에 대한 얕은 지식으로도 그가 하는 말을 조금 이해했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모순 어법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거의 혁명적인 이론을 발굴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리스에서 유래한 콘셉트 ‘카오스’가 ‘의미 없는’ 혹은 ‘형태 없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카오스로부터 ‘질서 정연한’ 혹은 ‘아름다운’ 코스모스가 만들어졌는데, 카오스와 코스모스는 원래 한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강조했다.
낡은 기기로 재생하는 필름은 매끄럽지 않고 자주 끊겼지만 고차원의 수학과 다차원의 마법이 만난 것 같았다. 사실 현재의 우주가 완전하고 일목요연하다고 믿는 우주 과학자는 없을 것이다. 과거에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어리둥절한 신념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견고해졌다. 그는 자기 비유가 실패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 말 그대로라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조차 우주를 함축적이고 불완전하게 묘사한 이류 과학자에 불과해 보일 것이다.
이런 식이었다. 인간이 맞는 가장 큰 문제가 죽음이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죽음을 물리쳐야 할 것이다. 죽음이란 인간을 이루는 세포와 분자의 해체를 의미할 텐데, 생명 없는 응결물에는 세포며 분자가 제멋대로 이동할 것이다. 따라서 죽은 자를 되살리는 방법은 다시 질서를 잡는 것밖에 없다.
처음에는 한 사람으로 시작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더 먼 과거의 사람들도 소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마침내 죽음으로부터 미래 인간뿐 아니라 과거에 살았던 이들까지 구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부모를 통해 생명을 얻으니 그 과정을 거꾸로 되돌려 자녀가 부모에게 생명을 돌려주는 방법을 찾는 것은 과학자의 과업이라면서. 이미 죽은 자들도 다시 살려낸다니. 우주진화론의 한 구석에 웅크린 신학 이론이 미래 인간을 위한 황당한 실용 학문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론을 실현하는 것이 학자의 목표라면, 신의 존재에 대한 지식은 전능함에 대한 원리 탐구로 이어질 것이다 그는 잠깐 여지를 두었다. 이 이론이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있지만 아직 과학 기술이 충분치 못하다는 게 문제라고.
나의 의문은 분명 논리적일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예전에 죽은 이들의 분자는 지구 밖으로 한참 멀어졌을 텐데 그걸 어떻게 붙잡는다는 얘기지? 우주에 떠도는 조상들의 먼지를 다 모아 일일이 분류한다 쳐도 그걸 누가 총괄하지? 먼지 덩이를 온전한 하나로 되돌리기 위해 우주 전체를 뒤흔들어야 하나?
이때 황당무계한 곳을 선회하던 그의 이론이 현생 인류의 가장 매력적인 이슈로 이어졌다. 최고조에 이른 기술이 사람을 되살리다 보면 지구는 더 이상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지 못할 테니 인간이 거주할 묵직한 몸체의 다른 행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한과 결함이 많은 지구를 벗어나 대기와 물이 있는 행성으로 옮겨간다는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세기의 숙제 아닌가. 그는 늘어난 행성의 뭉치를 바라보며 방점을 찍었다. “그러기 위해 발달된 과학으로 지구를 우주선처럼 움직이는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은 가끔 했다. 1만 년 뒤쯤이면 우주에 초지성적인 존재가 가득할 거라고. 무한대로 퍼진 생명체는 지상에 묶인 인간은 상상도 못 할 만큼 초월적이라서 어떤 물질 어떤 기질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거라고. 신경망을 도식화해 엄청난 빛을 뿌리며 은하계 너머 네트워크를 이룰 거라고. 그렇게 자각을 곁들인 양자학으로 시간을 초월한 불멸의 삶을 살 거라고.
그러나 막상 희대의 가설을 대하니 눈에서 쥐가 날 정도였다. 관심을 돌리는 정신적 체조를 하면서도 그가 우주의 미래를 공상하는 데 따르는 결정적 딜레마를 안겼다고 생각했다.
지금 물리학자들은 끈 이론이며 양자론, 중력의 대안적 통합으로 표준 모델의 현 상태를 설명하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게다가 우리가 숨쉬는 우주가 계속 형성되고 파괴되는, 본질적으로 무한대인 우주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가능성도 활짝 열어둔 상태였다. 그렇다면 앞으로 더 발견될 근본적인 진실은 무엇이 될까?
노스트라다무스의 퀴퀴한 예언이 젊은 우리를 내내 교란시키더니 어느 새 데친 아욱처럼 시들해져 버렸다. 수시로 붉은 달이 뜨고 행성끼리 일렬로 배열되며 징조를 내뿜는 지금, 단단한 원자 틈을 파헤치고 비가시적 암흑을 걷어내는 점성학이 새 시대의 예언자가 되었기 때문에.
한편, 별의 수명은 아주 짧거나(커다랗고 푸른 별은 몇 광년 반짝인다), 조금 느린 과정을 밟거나(중간 크기의 노란 별은 수십 억 광년을 떠돈다), 영원을 향해가는 듯 보인다(작고 빨간 별은 수백 억 광년 지속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머물렀던 초기의 나날들이 지나 수성과 금성과 지구가 부풀어 오르면 태양의 수소가 다 타버리는 순간이 올 것이다. 팽창시키거나 차갑게 식혀줄 연료가 없으면 별은 열핵반응 끝에 소멸하니까. 사실 우리들의 노란 별은 이미 40억~50억 광년 동안 충분히 뜨거웠다. 그러니 양자와 전자, 중성자의 모자이크가 흩어졌다 합쳐지며 별들로 끓인 수프가 식을 때까지 휘젓고는 바로 짓이겨버릴 때가 되었다.
그렇다면 종말의 시점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태양이 폭발할 때 우주 칵테일 파티를 벌이나? 쏟아지는 별을 보며 황도 12궁 복판을 혼자 걸을까? 그 순간의 황폐함을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 그 허전함은?
나는 느릿느릿 발 뒷꿈치를 끌며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슈퍼노바의 폭발이 우주로 날아간 뒤로부터 지금 얼마쯤 지났을까? 저 달의 남은 분홍빛 아래 ‘호수, 만, 폭포, 그리고 당신, 이 모두의 영혼’이라던 워즈워스를 암송하니 문득 범신론자가 된 것 같았다.
존재의 명예로운 혼란스러움으로 등골이 오싹해진 밤에 벌레들이 비공식 공연을 하고 모기들이 발목을 물어뜯는데, 나는 모든 것과 동떨어져선 독백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몰라. 그런 날은 기척도 없이 지나갈지도 몰라. 우리를 영원히 텅 빈 어둠 속에 남겨 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