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을 일상 거래를 위한 지급결제에 사용할 것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몇 년 전 엘살바도르에 출장 갔을 때 그 나라의 화폐가 없다는 것에 적지 않게 놀랐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지 화폐 속엔 역사 속 인물 혹은 자연의 경관과 특산물 중 엄선하여 제한된 지면에 담아 그 나라가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2001년 그들은 1892년부터 써온 살바도르 페소 대신 미 달러화를 택했다. 1892년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카를로스 에르제테가 지폐 앞면엔 콜럼버스의 얼굴을, 뒷면엔 마야문명지와 화산산 등을 담은 자국의 화폐를 만들었었다.
이렇게 국가의 화폐를 주변의 기축통화에 고정시키거나 자국의 통화를 버리고 기축통화를 채택하는 것을 ‘달러화 Dollarization’라고 한다. 이는 꼭 미 달러화의 채택만이 아니라 남아공 주변의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이 남아공 화폐를 채택한 것, 유럽의 여러 국가가 유로화를 채택한 것도 모두 달러화라고 일컫는다. 실질적 경제활동을 기축통화로 하더라도 자국 통화를 포기한 나라는 드문데, 엘살바도르는 자국 화폐가 없는 데다, 국민의 70% 이상이 은행구좌가 없는 나라이다. 게다가, 해외에서 송금해오는 돈이 전체 경제의 20%가 넘어 미 달러화의 속국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말부터 바나나공화국의 하나로 미국 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욕구가 항상 있어왔고, 미국에서 마구 달러를 찍어내자 미 달러에 의존하는 나라로 대안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엘살바도르 대통령 부켈레(Bukele)가 비트코인을 통화로 채택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국회에서 70% 이상이 찬성했다. 부켈레는 법안이 통과한 후 화산으로 발생하는 지열을 활용해 비트코인 채굴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비트코인 채굴에 산업 육성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2018년에 IMF는 동유럽의 조지아를 예로 들어 비트코인 채굴 및 관련 서비스 산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국가경제지표에 포함시킬 것을 내놓았었다. 화산의 지열을 비트코인 채굴에 성공적으로 활용한 아이슬란드를 모방하고, 석탄연료를 태운 에너지로 비트코인 채굴을 하는 중국을 향한 환경 옹호론자의 비판을 겨냥하였으리라.
2017년 봄 처음 블록체인 행사에 참여했을 때가 떠올랐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기존의 금융 시스템에 제외된 사람들이 쉽게 금융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행사에서 세계은행 명찰을 단 유일한 참석자여서인지 남미와 아프리카 등 금융 시스템이 취약한 많은 곳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세계은행에서 발간한 2017년 글로벌핀덱스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 17억 명이 ‘은행구좌가 없는 (Unbanked)’ 이들이다. 저축과 대출 같은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없고 신용사회에 신용을 구축할 기반을 갖지 못하는, 금융권에서 제외된 삶인 것이다.
디지털 화폐의 도입은 휴대전화만 있으면 누구나 금융 혜택을 누릴 수 있어 기존의 금융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은 곳에서 활발히 추진되어왔다. 특히 여러 섬에 사람들이 흩어져 있는 섬나라엔 제격인지라 전 세계 많은 섬나라가 도입 준비를 해왔고, 그중 바하마에서 지난해 10월 최초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샌드 달러’를 출시했다. 자국 화폐가 없는 엘살바도르는 CBDC 대신 비트코인을 채택했다. 그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엘살바도르처럼 자국의 화폐를 포기하고 미 달러를 써 온 에콰도르의 경우 원대한 꿈을 꾸며 2014년에 세계 최초로 중앙은행이 전자화폐를 도입했으나 4년 만에 사라졌다. 현금으로 상납을 받는 경제체제에서 투명성을 내건 전자화폐는 적대시되어 상용화되지 못한 것이다.
산골짜기에 작은 돌 하나가 물살을 가르고 그런 돌들이 하나둘 쌓이면 또 다른 강이 생기듯,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채택은 인류 역사에 그런 작은 돌을 놓은 셈이다. 어떤 한 국가나 단체의 통제를 받지 않는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암호화폐가 기존의 체제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에 궁극적으로 혜택을 가져다줄 것인지, 나는 기대에 찬 눈으로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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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윤정 금융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