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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가주 한인사찰들 ‘조용하게 경건하게’ 부처님오신날 봉축

2021-05-20 (목)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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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가주 한인사찰들 ‘조용하게 경건하게’ 부처님오신날 봉축
햇볕은 따스하나 바람은 쌀쌀하다.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 그놈의 코로나 괴질이 꼬리를 내리나 싶더니 변종이 머리를 든다니, 새로 오는 이놈은 성질머리가 더 고약하다나 어쩐다나...

이런 분위기 속에 일요일인 16일, 새크라멘토 영화사(주지 동진 스님) 카멜 삼보사(주지 대만 스님) 길로이 대승사(주지 설두 스님) 등 북가주 한인사찰에서는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이 봉행됐다. 실제 부처님오신날, 즉 음력 4월 초파일은 5월19일이나 동포사회 관행상 초파일 직전 일요법회에 맞춰 봉축행사가 진행된 것이다.

다른 종교세가 워낙 강한 동포사회인지라 부처님 도량이라야 모아도 몇 개뿐인데다 코로나니 불경기니 하는 여러 사정 때문에 모인 불자들을 다 헤아려도 코로나 이전의 두어 사찰 봉축행사 참가자에 못미칠 정도였지만, 바로 그렇기에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을 다시금 새기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다짐을 새로이 하는 서원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고 굳건했을 터다.


지난해 가을부터 주지가 없는 가운데서도 그 모습 그 대로 그 자리를 지켜온 샌프란시스코 여래사에 신도들 발길이 잦아지고, 산호세 정원사(주지 지연 스님)에서 젊은 시절부터 일요일이면 함께 모여 예불을 올리며 어느덧 황혼기에 이른 신도들이 경건히 혹은 분주히 봉축행사 시작을 기다릴 즈음, 길로이 대승사에서는 아기부처 탄생을 경축하기 위해 법은 스님이 치는 법고 소리가 은은하게 우렁차게 울려퍼지고, 카멜 삼보사에서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으로 장엄된 단 위에 아기부처가 우뚝 서서 아기부처 정수리에 정안수를 부어주는 관불의식을 기다리고, 새크라멘토 영화사에서는 정말 귀한 인연으로 이 도량에 모셔져 스님과 신도들의 정성으로 금박옷을 입힌 뒤 마지막 점안만을 남겨뒀던 새 부처님이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밤이고 낮이고 주중이고 주말이고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전화하거나 찾아가거나 무례한 짓에 이골이 난 기자임에도 봉축법요식 전날(15일) 오후에 준비상황을 알아볼 겸 이 절 저 절 전화를 돌리던 중 영화사에 전화를 건 뒤 신호음이 두어 번 울릴 때 무심코 본 휴대폰 시계가 정각 6시를 가리킨 걸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끊었을 정도로, 공부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영화사 동진 스님이, 게다가 신도 숫자 따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몸가짐 마음가짐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절이 텅 비는 한인 있더라도 야단쳐 내보내는 등 세상사 셈법이나 일희일비에 담을 쌓고 공부로 일관해온 동진 스님이, 봉축행사 사진을 보내주면서 “새 부처님 공덕인지 오늘 많은 사람이 왔다”며 “새 부처님 인연으로 모든 미국 불자들이 편안하길 바래본다”고 사뭇 기쁜 내색을 감추지 않은 것은 코로나 이전에도 드문 일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사는 이 세상 거의 모든 것이 얼어붙거나 뒷걸음질을 친 코로나 시국에 한글로도 영어로도 둘러볼 수 있는 근사한 온라인 도량을 선보이고 생각지도 않은 어떤 인연으로 법당 규모에 걸맞은 새 부처님까지 모시게 됐다. 이는 비단 동진 스님이나 영화사 신도들만의 경사가 아니다.

재작년 부처님오신날부터 제2차 3년결사에 들어가 어느덧 3분의2를 지나고 종반전에 들어선 삼보사 대만 스님은 별도의 법문 없이 석가모니불을 염하며 신도들의 관불의식 등 봉축의 예를 도왔다.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 열지 않고 있는 삼보사의 일요 정기법회 재개시기와 관련해 대만 스님은 “변종 코로나가 어떻게 될는지 지켜보면서 일단 8월말 백중법회까지는 이대로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나 참선이나 예불을 위해 개인적으로 혹은 그룹을 지어 삼보사를 찾는 것은 언제나 누구나 가능하다, 다만 스님의 3년결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급적 사전에 내방 계획을 알려줄 것이 권장된다.

대승사의 법고 소리는 삼귀의 뒤 연화합창단의 “불에도 타지 않고 물에도 젖지 않는 오로지 한마음을 간직한” 초파일 송가에 이어 울려퍼졌다. 거의 매년 그렇듯이 부처님오신날 전에는 봉축준비로, 당일에는 진행을 도우랴 합창단을 이끌랴 바쁜 가운데서도 법요식 이모저모를 깨알같이 정리해 사진과 함께 보내주는 자비행 보살에 따르면 “법고의 둥~! 탁~! 소리가 마치 도망치는 코로나의 뒷그림자까지는 혼내는 것 같았다”고 한다. 당초의 이전불사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바람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닐 터임에도 늘 웃으며 의연함을 보여온 설두 스님은 “세상이 아무리 악해지고 험해져도 긍정의 마인드로 해쳐나가면 코로나도 이겨내듯 다 극복해낼 수 있다”면서 “서로 나눔의 정신으로 세상을 품고 나누면 사회는 밝고 따뜻해질 수 있다는 정신을 부처님 오신 날에 새로이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SF정토회(총무 이예정)는 봉축법회를 수요 수행법회 시간에 맞춰 19일 저녁에 진행하는 걸로 조정됐으며 “나와 가족, 그리고 세상의 평화와 행복을 발원하며” 밝히는 연등과 영가등은 시애틀 정토수려원에 설치된다고 공지했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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