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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Obituary : 한인 이민자 삶 풍요롭게 만들었던 예술인

2021-03-25 (목) 08: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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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취자 시인(전 천문화센터 관장)

삶과 추억-Obituary : 한인 이민자 삶 풍요롭게 만들었던 예술인

지난 2014년 낫소카운티가 주최한 제1회 설날행사에서 ‘올해의 한인’상을 수상했던 천취자(왼쪽 네번째) 시인.

■ 지난 3월 3일 별세. 향년 84세

삶과 추억-Obituary : 한인 이민자 삶 풍요롭게 만들었던 예술인

2014년 뉴욕한국일보 인터뷰 당시.



1936년 일본에서 태어나 1960년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3년 도미한 천취자 시인은 한인사회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해내는 추진력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다.


일본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천 시인은 어린 시절 비행기 기름 관련 공장을 운영하던 부친이 퇴근 후에는 집으로 찾아온 재일동포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며 민족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배우게 됐다.

20대 초반에 미국에서 영어를 배우게 된 천 시인은 영어를 배우면서 배움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지만 자신감이 부족해 주눅이 들어서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학부형들과 나누고 우리 전통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발휘할 기회가 없던 한인들을 위해 천문화센터(Chun Cultural Center)를 열었다.

뉴욕한인봉사센터(KCS) 초창기 시절에는 부관장으로 시니어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센터 운영의 토대를 닦았으며, 롱아일랜드대(LIU) 대학원에서 아동교육학 석사, 코넬대 가정상담학 정규과정 수료를 통해 퀸즈 플러싱 IS25 특수반 교사, 뉴타운고교 교사로 심리적 안정이 필요한 학생들을 상담 지도했다.

미국 청소년교육을 하면서 한인 2세들의 민족교육을 힘을 보태고 싶었던 천 시인은 뉴욕한성학교 교장, 뉴욕신광한국학교 교장, 신광유치원 원장 등을 20년 이상 역임했으며 롱아일랜드한국학교 창설에도 힘을 보탰다.

천 시인은 예술적 소양을 맘껏 뽐낸 ‘예술인 천취자’로서 문화센터인 천예술학교와 천갤러리를 운영하며 유아부터 성인까지 전 연령대의 한인들에게 이민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힘을 보탰다.

천 시인은 자작시 ‘맷돌’로 시문학을 통해 한국문단에 등단했고, 2005년 시집 ‘낮에도 꿈이 있다’를 발간했다.

이를 비롯해 미동부한인문인협회, 한미현대예술협회, 국제계관시인협회, 미국시인협회와 국제펜(PEN)클럽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2009년에는 미주한인여성네트워크 창립6주년 연례만찬에서 역대 회장으로서 가장 많은 기금을 모았으며, 2010년에는 숙명여대 미주총동창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배움엔 나이가 없다며 2019년 롱아일랜드대 대학원에서 예술학 석사를 취득한 천 시인은 교육학을 전공한 교육자이자 한국학교 교장, 동창회 회장, 문화센터 관장 등 한인사회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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