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개최지 ‘소그래스TPC’ 뒷 이야기
▶ 74년 탄생한 ‘플레이어스…’ 홈 코스 없이 3년 전전하다가 플레처 ‘무상 제공 베팅’ 행운
뱀·악어 우글거리던 늪지대서 전세계 골프의 중심지로 변모
미국 플로리다주 폰테베드라비치에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본부와 그들의 홈 코스인 소그래스TPC가 있다. TPC는 ‘토너먼트 플레이어스 클럽(Tournament Players Club)’으로, PGA 투어가 운영을 맡고 있는 코스를 말한다. TPC 코스의 시초가 소그래스다. 소그래스에서는 이번 주에 열리는 ‘제5의 메이저대회’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총 상금 1,500만 달러)이 매년 개최된다. PGA 투어가 자신들의 이름(플레이어스)을 걸고 하는 만큼 이들에게는 이 대회가 1년 중 가장 큰 행사다. 클럽하우스 옆 국기 봉에는 그해 우승자의 국기를 1년 동안 게양해 예우한다. 태극기도 두 차례 걸렸다. 2011년 최경주(51·SK텔레콤)와 2017년 김시우(26·CJ대한통운)가 위업을 이뤘다. 두 사람이 우승 당시 사용한 드라이버도 클럽하우스에 전시돼 있다.
PGA 투어 본부와 소그래스TPC는 해안에서 불과 1.6km 떨어진 곳에 있다. 사실 이곳은 40여 년 전만 해도 뱀과 악어가 우글거리는 늪지대였다. 그랬던 곳이 오늘날 세계 프로 골프의 중심지로 변모하게 된 데에는 ‘100 달러의 내기’와 ‘1 달러 수표’가 있었다.
먼저 100 달러 지폐에 얽힌 이야기. 1970년대 말 PGA 투어 커미셔너였던 딘 비먼(83)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의 홈 코스를 폰테베드라비치에 만들기로 결정했다. 비먼의 아이디어로 1974년 탄생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3년간 각기 다른 코스를 오가다 1977년부터 소그래스CC(컨트리클럽)에서 열리고 있었다.
소그래스CC는 현재 소그래스TPC와 큰길을 사이에 두고 있다. 비먼은 처음에는 PGA 투어 홈 코스로 소그래스CC를 매입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그래스CC 측은 코스를 넘길 생각이 없었다. 소그래스CC의 소유주였던 찰스 코브 회장은 비먼이 투어 선수들의 지지를 받지 못해 결국 재정 문제에 봉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PGA 투어가 자신의 소그래스CC를 계속 임차해 개최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비먼은 PGA 투어 자체의 토너먼트 코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두 사람은 이를 두고 100달러짜리 내기를 걸었다.
1PGA 투어 소유의 토너먼트 전용 코스를 만들겠다는 비먼의 꿈은 부동산 개발업자인 제롬과 폴 플레처 형제를 만나면서 돌파구를 찾는다. 1978년 당시 부동산 개발 침체를 맞고 있던 플레처 형제는 비먼에게 415에이커(약 167만 9,400㎡)의 늪지대를 단돈 ‘1달러’에 팔겠다고 제안했다. 형제는 PGA 투어가 그곳에 홈 코스를 만들어 매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대회에 참가한다면 죽어 가던 도시에 활력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비먼으로서도 그들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비먼은 그렇게 얻은 늪지대에 코스를 만들기로 했다. 설계는 가학적 디자인으로 유명한 피트 다이(1925~2020)가 맡았다. 두 사람의 노력으로 소그래스TPC는 마침내 1980년 10월 개장했다. 이후 1982년부터 지금까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이곳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광대한 땅을 사실상 무상으로 제공한 이 도박은 플레처 형제에게도 기대 이상의 부를 안겨줬다.
PGA 투어의 홈 코스 건설을 두고 내기를 했던 인근 소그래스CC의 소유주 코브 회장은 약속대로 비먼에게 100달러를 건넸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메모도 전달했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말한 걸 이룬 딘 비먼에게.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일의 어려움에 돈을 걸었던 코브와 그 회사로부터.”
100달러 지폐와 1달러 수표는 지금도 소그래스TPC의 클럽하우스에 전시돼 있다. 1달러 수표에는 발행인이 ‘토너먼트선수협회(Tournament Players Association, Inc)’, 발행일은 1979년 2월 1일로 돼 있다.
만약 비먼의 꿈을 믿은 플레처 형제의 도박이 없었다면 소그래스TPC는 탄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땅을 무상으로 받았어도 재정이 여전히 어려웠다. 비먼 측이 개장을 앞두고 ‘염소’를 고용한 것을 봐도 짐작이 간다. 1980년 개장을 앞두고 있을 무렵, 코스 주변 이곳저곳에 쌓인 거대한 덤불을 깨끗이 정리해야 했으나 돈은 바닥을 드러냈다. 이때 설계자 다이는 한 농부가 덤불 속에 염소를 풀어놓은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아이디어는 대성공이었다. 비먼은 “염소를 이용한 것은 굉장히 혁신적이었다. 6~8개월 만에 염소들이 덤불의 80%를 먹어 치웠고, 우리는 돈 한 푼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오늘날 전 세계 프로 골프 단체 중 가장 큰돈을 굴리는 PGA 투어도 1달러의 꿈에 힘입어 급성장의 전기를 맞았다. 100달러 내기는 투지에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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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