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그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부조리 문학이라고 합니다. 부조리 문학의 대표작을 들라면 누구나 아일랜드 태생의 프랑스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립니다.
두 남자가 한 국도의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고도’에게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기다립니다. 심지어 ‘고도’가 실존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밤이 되자 양치기 소년이 나타나 ‘고도’ 씨는 내일 온다고 알려줍니다. 제2막(다음 날)도 비슷한 내용이 그대로 반복됩니다. 기다림에 지친 그들은 나무를 쳐다보며 목이나 맬까 하지만 끈이 없어 내일 끈을 챙겨와 ‘고도’가 안 오면 매자고 다짐합니다. 두 사람은 입으로는 떠나자고 하면서도 여전히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연극은 막을 내립니다.
도대체 오지 않는 ‘고도’는 누구일까요? 기독교 윤리학자 루이스 스메데스는 ‘고도’는 사람들이 인생의 한 탈출구로 매달리는 허무한 꿈을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공연 50주년 기념식에서 사람들이 작가 베케트에게 물었습니다. “자 이제는 ‘고도’가 누구인지 말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때 베케트는 황당한 대답을 했습니다. “낸들 어찌 알겠습니까?” 결국 ‘고도’는 공허하고 의미 없는 삶을 의식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대한 비유 아니겠습니까?
2021년 신축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를 보내고 그래도 희망을 기다리며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코로나는 더욱 기승을 부려 확진자와 사망자가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지만 그래도 백신이 접종되기 시작했으니 새해의 희망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쩌면 오지도 않을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미국 땅에서 우리는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답답한 현실이 연초의 희망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1년 1월 6일’은 2001년 9월 11일의 사건보다도 더 충격적으로 미국의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민주주의 모범국가이며 한 때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경찰국가로서의 당당한 위상을 자랑하던 나라의 가장 신성한 국회의사당이 폭력으로 점령당한 사건은 해석하기가 정말 어려운 난제를 미국 땅에 남겼습니다. 더구나 그 불법 폭력의 선동을 현직 대통령이 했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무대 위에서 오지도 않는 ‘고도’를 계속 기다린다며 관중들의 애간장을 태우던 연극 무대보다 더 비현실적입니다.
이날의 부끄러운 광란의 사태는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입니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책에서 언제든지 소환해서 비웃음과 멸시의 대상으로 삼는 역사상의 오명을 남긴 수많은 인물들처럼 그들도 역사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만, 오명도 명예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저력을 믿고 싶습니다. 극단적인 과격분자들의 일탈에 대해서 스스로 자정하는 힘을 가진 나라라고 끝까지 믿고 싶습니다. 프랑스 역사학자인 마르크 블로흐는 역사의 주인은 인간이라고 주장하며 “현재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면 필연적으로 과거를 알지 못하게 된다”고 갈파했습니다. 그는 ‘역사를 위한 변명’이란 책에서 아무리 혼탁한 과정을 겪어도 역사는 진실을 향해서 흘러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믿어보자고 서로를 격려하고 싶습니다.
특히 올해는 흰 소의 해라고 합니다. 흰색은 신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소의 부지런함이 올 한해 신성한 의미를 더하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부조리한 세상들이 아름답게 변화되어 갈 것을 믿어보면 어떨까요? 그래도 새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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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근 목사 (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