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등(無盡燈)] 일락서산월출동
2020-12-31 (목)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
나뭇잎 다 떨어진 영화사의 숲은 많이 헐거워졌다. 휑한 느낌도 들지만, 한편 시야가 트여 시원한 맛도 있다. 나뭇잎 사라진 것처럼, 코비드로 인해, 신도들도 사라졌다. 빈 절이 쓸쓸하지만, 나뭇잎지지 말라, 할 수 없듯이, 그들에게도 그전처럼 여기 있으라, 할 수 없다. 또한 나뭇잎 졌다고 영영 다시 잎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님을 알기에, 잠시 휑함은 당연히 받아들여할 일이라 여긴다. 조용하면 절간 같단 말이 있듯이, 절이란 원래 이런 것이지만, 가족들과 늘 같이 밥을 먹고, 친구와 여행도 가고 했던 이들, 늘 바쁘게 손님을 대하고 보내고 했던 사람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방문객을 만나고 전화도 하던, 홀로 남겨진 노인들,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사람들...부대끼며 사람 속에서 살던 그들은 올 한 해, 이 막막함을 어찌 견디며 살았고, 살고 있는지...지금도 어디선가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할, 많은 이들이 가슴아프다. 이것은 혼자 만의 일이 아니니,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은 인내할 때라고, 모두가 고통을 공유해야할 때라고 얘기해도, 본인의 고통이 귀를 막아, 들리지 않을 것임도 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매일 일하고 매일 출근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이 힘들었다. 때때로 그만두고 싶었다. 그 힘든 일을 지금 인 하게 되었다. 힘들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더 힘들다. 왜냐하면, 우리는 뭔가 차 있을 때는 가득 찬 것만을 보고, 사라졌을 때는 사라진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하루 종일 달린다고 생각해보자. 곧 힘들어진다. 그럴 때는 당연 앉아 쉬면 편하다. 하루 종일 앉아있다고 쳐보자, 힘들다. 그럴 때는 눕는 게 편하다. 하루 종일 누워있다고 쳐보자, 힘들다. 일어나 달리고 싶어진다. 이렇듯, 힘든, 것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힘들다, 여기면, 어떤 상황에서든, 삶은 힘들다는 것이다. 죽는 것도 힘들다. 포커스의 문제다. 달릴 때 힘들다,에 포커스가 있는가, 달린다,에 있는가, 이다. 포커스를 전환하여, 사는 것도 좋고, 죽는 것도 좋고, 일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할 수 있다. 상황은 변함없다. 하지만, 삶은 정말 달라진다. 이 쉬운 걸 못하는 것은, 이것이 내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바깥에 그 원인이 있다고 여겨서다. 중생계의 삶이다. 깨달음은 아주 간단하다. 원효 스님은 ‘일락서산월출동’ 서산에서 해가 지면 동산에서 달이 뜬다, 는 말에 깨달음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하셨다. 해가 서쪽에서 지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고, 달이 동쪽에서 뜨는 것 또한 삼척동자도 안다. 모두가 다 도인인 것이다. 이미 도인인데 도인처럼 못사는 것은 나만,에 사로잡혀 있어 그렇다. 힘들다,에 포커스를 맞추고 본다면 지금은 이 중도 힘들다. 이곳에선, 절에 아무도 안오면 절이 어찌 되는지, 중이 죽어도, 모른다. 그러나 힘들다, 대신, 평화롭다,에 포커스를 맞추고 살았다. 여전히 행복하다. 매일 해가 뜨고 지듯이, 2020이라는 이름의 큰 한 해가 지고 있다. 그러나 내일 또 뜰 것이다. 달도 차오르고 또 질 것이다. 더러 해가 안보이는 날도 있고, 유난히 빛나는 날도 있으며, 아주 캄캄한 그믐이 가면, 부처님 눈썹 같은 초승달이. 곧 뜰 것이다. 삶이란 두레박처럼 이렇게 오르내리는 것이다. 일희일비하며 그리 사는 것이다. 힘들 땐 그저 힘들면 된다. 별거 없다.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다. 편히 마음을 먹고 오르내림에 몸을 맡기면 된다. 지금은 내려가는 중이고, 다시 반드시, 싫어도 올라와야 한다. 현실은 변했는데, 전의 그대로를 유지하고, 내려가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고통일 뿐이다. 편히, 은산철벽에서 손을 놓는 것이다. '일락서산월출동' 삶이 캄캄하다 느껴질 때, 화두 삼아, 한번 되뇌어 보시기 바란다. 이 밤은 곧 지나갈 것이고, 곧 밝은 새해가 뜰 것이다. 해피뉴이어.
<동진 스님 (SAC 영화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