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주인공 페터 슐레밀은 행운의 자루를 얻기 위해 악마에게 그림자를 팔았다가 사회로부터 외톨이가 되고 만다. 그림자를 악마에게 건넸을 때만 해도 슐레밀은 그림자 따위는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인 쓸모 없는 존재로 여겼다. 하지만 그림자를 잃고 보니 그림자란 쓸모 없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작품 안의 그림자 존재는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지만 공통적인 의견은 그림자는 무의미하다고 생각되곤 하지만 없어지게 되면 비로소 중요해지는 무언가다.
2020년 전 세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그림자’를 잃어버렸다. 코로나19 시기 이전에 지니고 있을 때는 너무나 당연해서 그 중요함을 인지하지 못했으나, 막상 잃고 나니 깨닫게 된 소중한 무언가. 누군가에게는 그림자가 ‘일상’일 수도 있고,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수다’ ‘외출’ 등일 수도 있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앗아갔다. 과거에 누렸던 모든 일들이 지금에서야 얼마나 소중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됐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회사에 출근하고, 휴가에 맞춰 여행을 가는 그런 소소했던 하루들이 한 순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코로나19 시대에 사람들은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 마냥 하염없이 집 안에 갇혀 지내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곳곳에서는 ‘스테이 앳 홈’ 봉쇄령이 다시금 연장됐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연말연시로 이어지는 연휴기간은 코로나19로 지쳐있던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규모 모임을 즐기거나 여행길에 오르게 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최근 LA 카운티에서만 매일 평균 1만4,000명에 달하는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고, 캘리포니아주 전역의 누적 확진자 수는 220만 명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더 최악의 상황이 새해 초인 1~2월 사이에 발생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제 하루만 더 지나면 2021년이다. 2021년, 우리는 과연 ‘그림자’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림자의 행방은 모두의 노력에 달렸다. 시민의식을 가지고 정부의 안전지침을 준수하며 때를 기다리자.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우리 곁에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림자는 언제든, 또다시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슐레밀은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벗이여, 만약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라면 부디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 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 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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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