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친정 식구 하나 없이 혼자 유학 와서 보석 & 구두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너무 외로웠다. 척박한 환경에서 소수민족은 약점이었다. 그러나 소수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눈에 띄는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시키고 싶었다. 한국에서 최초로 자동차를 제작 생산한 아버지, 시발자동차 최순성 회장을 본받아 불모의 지대에서 프론티어의 개척자 정신으로 힘있게 파트너인 하나님과, 모든 장벽을 넘었다. 그래서 이들의 연예인이 되자, 그렇게 리드가 되자고 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한인들에게 도움을 줄까 싶었고 한인모임뿐 아니라 타인종 모임에 가면 각국언어로 노래를 한 결과 3분이면 모두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협회에서 부모의 권리 세미나, 트레이닝, 네트웍 통한 인적관계 넓히기, 커뮤니티 리서치 등 무어든지 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미쳤다, 돈 안생기는 일에 목숨 걸다니,” 그래도 어려운 사람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자원봉사자로 법정 통역도 갔다. “ 가보자, 무조건 가보자.” 친정식구, 내식구 같은 마음이 먼저 한 것이다. 최윤희 회장이 바른 말을 세게 하고 옷차림도 강하게 하니 처음엔 “ 저 사람 뭐야? ”하던 사람들도 다음에 만날 때는 바로 기억을 했고 친구가 되었다.
설날이면 한국음식 파티, 기타리스트를 대동한 베이글 생일잔치 등등 늘 화제와 재미를 몰고 오는데 ‘나를 위해 재미난 일을 한다’고, 화통하면서도 따뜻한 정이 넘친다.
뉴욕한인학부모협회 활동을 하는 한편 최윤희는 2003년 9월부터 현재까지 뉴욕시 교육국 학부모 코디네이터로 J.H.S 189Q에서 근무하고 있다. 뉴욕시 교육국 소속 1,800여명 학부모 코디네이터 중 유일한 한인이며 2005년 뉴욕시 교육국 최우수 학부모 코디네이터상을 수상 했다.
최윤희는 지금도 열심히 공부한다. 처음 코디네이터 일을 시작하면서 ‘교장의 스파이’ 라는 등 인종차별을 많이 당했다. 학교도 인종끼리 뭉치는데 한인은 과거나 현재나 혼자뿐, 그래서 이것저것 모든 분야의 지식을 섭렵했다.
미국 행정부서에 대해, 정치시스템, 타인의 마음을 여는 법까지 네트웍을 통한 공부였다. 현재 학교 동료들은 컴퓨터 귀재인 20대들이다. 그녀 역시 이들 못지않게 매일 새로운 지식을 교육국 네트웍을 통해 배우고 익힌다. 이 팔팔하게 살아있는 활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매일 새벽 퀸즈장로교회에 나가 30분간 기도를 한 후 돌아와 출근준비를 한다. 모든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5대가 항상 기도하는 크리스천이다. 앞에 나서 활동하는 데는 비즈니스를 하는 남편 리차드 칼리간이 많은 후원을 해주어 가능했다.”
미국명 크리스틴 칼리간, 2005년 뉴욕1(NY1) 방송의 아시안아메리칸 주간 인물 선정, 부산교육청 50명 교사를 뉴욕시공립학교 연수 프로그램 론칭으로 2008년 올해의 한인 대상, 2015년 뉴욕주 탁월한 여성상 수상, 2016년 한국정부의 대통령표창을 수상한 바 있다,
<
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