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남편이 뭔들

2020-10-27 (화) 12:00:00 김정원 (구세군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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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한 인터넷 사이트에 나이 어린 엄마가 이제 태어나 탯줄이 마르지도 않은 아기를 단돈 20만원에 판다는 게시물을 올렸다가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아기엄마 또한 어려운 사정이 있겠지만 격동의 시대를 겪으신 어르신들이 이 뉴스를 들었다면 무척이나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먹을 것 걱정, 입을 것 걱정 없는 이 좋은 세상에 아이아빠가 없다 하여 낳은 아이를 돈 주고 판다는 것...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온 제가 목회를 하면서 만났던 어머니들, 특별히 지금 칠순을 넘긴 분들 중에는 거의 남편이 뭔들 하며 인생을 살아온 분들로 넘쳐납니다. 남편의 폭력 속에서도 자식들을 위해 다라이 장사, 공사장 막노동 등 안해 본 것 없다는 황 할머니, 집 나간 남편에 그 첩이 두고간 핏덩이 아이까지 키우느라 평생 한복 바느질로 시장에서 젋은 세월을 다 보냈다는 정 할머니 등 그렇게 고된 세월을 살았어도 신기한 것은 그분들이 여전히 흥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든 뭔들 닥치는 대로 일하시며 저녁에는 소주 한잔으로 고된 하루를 정리하셨다고 하시며 찬송가도 트로트처럼 부르시는 분들, 지금도 주방에서 젋은 저도 못드는 국솥을 한번에 번쩍 들어올리는 그분들은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시는지… 아마도 어머니로 살아온 세월이 만들어낸 힘인 것 같습니다.

가난과 싸우고 성별에 불평등했던 시대와 싸우시면서 자식들을 지켜내느라 다들 기가 쎈 어머니 또는 할머니가 될 수밖에 없었던 분들, 작은 몸으로 그 많은 것을 감당하시느라 하나같이 다 무릎이 망가지신 분들, 그 덕분에 지금 우리 젊은 세대가 곱게 늙어 가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쎈 기를, 삶의 유산으로 물려받아서 그래도 사연 많은 이 작은 대한민국이 이만큼 살지 않았나, 우리 이민자들도 물 설고 땅 설은 이곳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도 빨리 변화하는 세대교체 속에서 이 삶의 유산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며 잠시 나의 할머니, 나의 어머니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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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씨는 한국에서 구세군 청소년 사역자로 섬기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2010년 미국으로 이민을 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 지금은 아이 셋을 둔 엄마가 되었고 이곳에서도 구세군 지방 청년 담당 사관(목사)로 남편과 같이 활동하고 있다.

<김정원 (구세군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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